오후가 되자 경철 고양이가 집사 꼬랑지를 졸졸 따라다니며 애애~ 애처로운, 배 고픈 소리를 낸다. 시간을 보니 절대 배가 고플 때가 아니다.
그래서 닭가슴살 육포를 한 그릇 내다주니 냉큼 한 입 물고 돌아서는데 철수도 마침 출출 했는지 다가와 앉는다. 웬일이야, 일부러 입에 물려 주지 않으면 간식 같은 건 잘 먹지도 않는 고양이가?
그런데 하나 먹어볼까~ 하는 찰나에 경철 고양이가 돌아와 다시 뒤적뒤적 침 발라가며 제 입에 맞는 것을 고르느라 한참을 엎드려 있으니 이윽히 내려보다가
돌연 빡! 소리가 나도록 엎드려 있는 머리를 한 대 후려친다. 엎드려 있다가 졸지에 정수리를 한 방 제대로 맞은 경철 고양이 눈도 못 뜨고 깜짝 놀라 고개를 들고 집사도 깜짝 놀라 그 순간에 셔터 누르는 걸 잊어버렸다. 왜냐하면 먹는 걸로는 절대로 화를 내기는 커녕 백 번 양보하는 것이 철수 고양이이기 때문이다.
경철 고양이, 육포 그릇을 내려다보며 "내가 이거 먹는 기이 그리도 잘못한 거가?" 생각하는 듯하다가
이제 곧 다시 한 방이 날아 올 것 같았는지 지레 겁을 먹고 아예 눈까지 질끈 감고 피하는 시늉을 한다. 그 사이 육포 그릇을 가만히 내려다 보던 철수 고양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옆으로 돌아앉고 만다. "에이 내가 저넘에 것 안 먹고 만다" 싶었던 것일까? 형이 돌아앉으니 이 눈치 없는 하얀 고양이 다시 그릇에 얼굴을 디밀고 핥핥 제 입에 맞는 걸 고르기 시작한다. 이 꼴을 옆 눈으로 다 보고 있던 철수 고양이 한 대 맞았으면 알아서 비키지 배짱 좋게 하던 짓 계속 하는 제 동생 모습이 도저히 소화가 안 됐던지
와락 덤벼 들어 제 동생을 쫓기 시작한다. 눈 깜짝 할 사이에 의자 밑으로 쫓겨 들어간 경철 고양이, 저 짓 하는 건 또 보다보다 처음 본다. 의자 등받이가 직각이 아니어서 벽에 찰싹 붙지 않아 그 사이로 빠져 나올 수 있는 틈이 있었던 모양으로 의자 아래로 정면으로 숨어 들어가 저 뒤로 빠져나오는 중이다. 하지만 그 꼼수를 눈치 챈 제 형이 벼락같은 기세로 한 발 다가가니
뒷걸음질로 다시 의자 밑으로 들어가는 중이다. 마이클 잭슨의 빌리 진(Billie Jean)이 있었으면 좋았을걸~
아무튼 그렇게 문워크로 다시 의자 아래로 숨어든 경철 고양이. 왜 맞았는지 왜 쫓겼는지도 모르고 눈동자가 위로 뜬 것이 잔뜩 겁 먹은 표정이다. - 네 잘못은 이 녀석아, 하나 물고 갔으면 형이 하나 입에 물 때까지 디가려 주는 배려를 하지 않은 것이여~ 하긴 제 형 밥도 뺏아 먹는 고양이한테 배려는 무슨...
이쯤 되면 집사가 나서지 않을 수 없다. 간식은 함께 먹게 내버려 두면 철수에게는 거의 기회가 돌아가지 않으니까. 철수를 불러 따로 한 스틱 입에 물려주니 진짜로 속 없는 하얀 고양이, 그 새 나와서 다시 와작와작 하고 있다 ㅋㅎㅎ
그렇다고 저 먹을 기회 없다고 한 방 제대로 날린 철수 고양이가 많이 먹느냐? 딱 두 개 먹으면 제 갈 길 가버리는 식욕이면서 무슨 마음으로 동생을 줘패기까지 했을까 싶다.
이건 경철이 해놓은 짓이다. 반 먹고 돌아와 새 것 먹고, 그 짓을 적어도 네 번은 했네그랴...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니 저 그릇이 찌꺼기만 남고 거의 비어 있었는데 밤 새 경철이 바스락 대며 먹는 걸 의식하고 있었기에 자아가 어쩌려고 저렇게 먹어대는지 걱정 아닌 걱정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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