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라고 하면 수의사조차도 일단 놀라게 만드는 완벽하게 다르게 생긴 내 고양이 형제, 소식 전한지도 제법 된 듯하고 새해를 맞았으니 예뻐해 주시는 분들께 공손히 인사라도 올리게 하려고 느들은 포즈만 적당히 잡아주면 인사는 내가 할팅게 잉? 하며 새해 첫 아침 첫 식사 하시는 장면부터 따라잡아 내내 셔터를 누르다 보면 그럴싸한 내레이션만 보태면 볼 만한 장면이 나와주리라 기대하고, 늘 그래왔으니 이번 해에도 그럴 줄 알고...
경철 고양이는 평생 그래 왔듯 서서 먹고 철수 고양이는 고양이답게 앉아서 먹고 - 쓰고 보니 참 희한치, 경철이는 개도 아닌데 왜 평생을 저렇게 서서 밥을 먹을까? 유일하게 그릇을 감싸 안듯이 앉아서 먹을 때가 있는데 동결건조 연어 간식을 먹을 때다, 그것도 자주 주면 서서 먹고 몇 달이 지나 잊었을 때쯤 다시 주면 어김없이 그릇을 껴안듯 앉아 먹는다
철수 고양이는 건사료를 끊은 후 식사를 부쩍 오래, 많이 한다. 대부분의 경우 한 캔을 한 자리에서 모두 먹어 치우는데...
철수의 눈길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주목하면 내가 위에 왜 말 없음표를 찍었는지 이해가 가지 싶으다
이 하얗고 어두운 그림자, 일단 집사 눈치 한 번 스윽~ 보고 즈 형 밥그릇으로 직행한다. 그 동안 철수 고양이는 눈길만 경철 고양이에게로 향한 채 먹지도 안 먹지도 못하고 있다 - 경철고양이 밥이 모자라 그런다? 천만에 아직 제 것 반도 안 먹고 저 지롤을 한다.
다음 장면은 없다 - 집사가 도저히 열불이 나 못 참겠어서 제 밥그릇 뺏기고 저만치 물러난 철수에게 경철 고양이가 한참 먹고 있는 밥그릇을 훅! 뺏아 갖다주느라 사진이고 나발이고... 그런데 ㅍㅎㅎ! ㅋㅎㅎ! 열불 났던 집사 어디에 솔 났지 싶도록 웃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 경철 고양이 막 달려온다, 말처럼 두 발 모아 뛰기로! 놔~ 경철 고양이가 속 상해 하리라 짐작은 했지만 이렇게 말처럼 달려오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바 - 다시 뺏아온 즈 엉아 밥그릇에 얼굴 들이미는 걸 살살 제 밥 쪽으로 유도해 데려다 놓고 웃지도 울지도 못할 식사 시간이 거진 지났는데
철수 고양이가 식사를 마치고 이 쪽으로 다가오니 진작에 다 먹고 산책 중이던 경철 고양이 - 야아 쫌 보소, 이건 또 무슨 장면?
누가 머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철수 고양이가 제 쪽으로 오는 것만으로 혼비백산, 집사 때문에 시야가 가려지자 고개를 빼가며 즈 엉아의 동태를 살핀다. 잠시 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당연한 듯이 제 엉아 밥을 뺏아 먹던 기백은 다 어디 가고!? 7년이 가깝도록 함께 살아 온 집사도 도무지 해석이 안 되는 이것이 무엇인지 가늠이 안 된다. 알아보실 수 있는 분은 쫌 갈차 주씨오, 내 한 턱 쏠팅게~ --;;
그리고는 어째어째 두 고양이 시키 꽁무니를 따라 다니며 절 하는 장면은 고사하고 투샷이라도 잡으려 셔터를 눌러대는데 나란히 포즈 잡아주는 건 언감생심, 이거라도 어디냐~ 반갑던 와중에 집사와 시선이 딱 마주친 경철고양이, 딱 한 샷 날리고
일 초도 지체없다, 집사에게 애앵~ 싸이렌 울리며 뛰어온다. 돌아보는 철수?
흥! 지가 먼저 달려와 인간 발 옆에! 이건 내 발 옆에 딱 붙어 엎드린 넘 카메라 거꾸로 돌려 내 눈으로 확인도 못하고 찍은 장면이다. 장면이 이런 식으로 진행 되면 인사는 커녕 투샷에 억지 내레이션 얹는 작업도 못하겠다 이 넘들앗!
또 열불 오른 집사 벌떡 일어나 두 녀석 모두에게 '따라오지 마라'고 엄포를 놓으며 자리를 옮기니 허뜨?! 큰 절은 아니지만 두 녀석이 합을 맞췄나 고개라도 숙여 사랑하는 모든 분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 인사를 해 주시네??? - 천재 괭이들 아녀? ㅎㅋㅋ
머 아는 분들을 모두 아시겠지만 집사가 쌩~ 하고 자리를 피하니 두 녀석 모두 뻘쭘해져 무안함에 시전하시는 그루밍 장면이지만 늙은 집사 성의가 괘씸하니 이웃님들 모두 이 녀석들이 건네는 새해 인사쯤으로 받아줍서~~~ 우리를 아는 분들 뿐만 아니라 이 시간을 함께 숨 쉬는 모든 분들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고 평안한 한 해 맞으시옵소서, 이것은 우리의 마음을 다한 깊은 진심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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