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가 정말로 삼백 년 만에 독서에 몰두한 모습을 이윽히 내려다보던 철수,
아무리 책을 읽고 있다 해도 집사에게도 다 촉이 온다.
아, 저 집사를 방해해야 하는데 너무나 오래 집사의 같은 자세를 보고 있자니 언제 덮칠지 기회도 못 잡겠고 졸음이 슬슬 밀려온다.
아니, 아니야, 내가 지금 졸고 있을 때가 아니지! 정말로 뭔가에 깜짝 놀란 듯 졸음에서 깨어나는 계획이 다 있는 고양이. 그리고 그에게도 촉이 있어 저를 카메라에 담으면서 집사가 므흣한 미소를 지을 때, 이때가 바로 직업정신을 발휘할 절묘한 찬스라는 것을 깨닫는다.
집사는 꽤 오래 위에 표시한 문장에 멈춰 나름의 사유에 빠져 있다가 철수의 시선을 느끼고 머릿속도 정리할 겸 사진을 찍기 시작한 것이었는데
호다닥 뛰어내려 집사 배 위에 냉큼 올라앉아 식빵을 구우며 그래도 책을 놓지 않는 집사의 간을 보는데
밥 한 입 하고 숨숨집 지붕에서 만족스러운 스크래칭을 하던 경철의 눈에 이 장면이 포착,
"흐미, 저 시키 간도 크다. 엄니가 빽! 하면 어쩌려고 저런디야?" 하듯 스크래칭까지 멈추고 혀를 내두르며 이 장면을 관망한다.
하지만 대장 고양이는 저 하얀 소심쟁이 하고는 전혀 다르다. 내가 사진 찍느라 한 손에는 책, 다른 한 손에는 전화기를 들고 이넘저넘 찍고 있는 어수선한 틈을 놓치지 않고 "엄니, 책 좀 치우고, 에엥~" 하신다.
그렇다. 그 순간 나는 깨닫고 책 읽기를 포기한다. 책 속의 문장은 머무르지만 고양이의 시간은 머무르지 않는다. 그러니 책을 놓는 수밖에... 보이는가, 책을 물리친 프로 방해러, 대장 고양이의 이 만족스러운 모습
집사도 이런 시간들에 예전에 느끼지 못했던 평화로움과 타인의 왜곡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오롯이 "나"일 수 있는 평화로움을 느끼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