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 얼굴에 꾹꾹이 하는 고양이 그리고 10년째 수면부족

불면증이 있는 나는 제 때에 수면유도제를 먹지 않으면 날이 훤히 밝을 때까지 잠들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이런 사람들이 대체로 그렇듯이 아침잠을 깊게 오래 자는 편인데 10년째 단 하루도 잠을 충분히 잘 수 없는 이유가 있으니,

[고양이, 늦잠 자는 집사를 깨우는 중]

바로 이 녀석 때문이다. 사진 구도는 또 왜 요따구인가 하니 집사가 누운 채로 보채고 보채는 아이를 30mm짜리 렌즈로 잡으려다 겨우 초점이 맞은 것이 이것이다.

저 눈빛 봐라, "일어나라 당장!" 학교 갈 시간 다 됐는데 늦잠 자는 아이 깨우는 엄니의 엄근진?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는 경철과 집사를 기어이 깨우고 마는 철수]

하얀 녀석은 무엇하나 누운채로 찾아보니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는 자세로 앉아 이 쪽의 상황을 관망하고 있다. 이 녀석은 성격이 전혀 달라 단 한 번도 집사를 이렇게 직접적으로 깨운 적이 없다. 보이시는가, 우리 철수 고양이가 집사 몸에 철푸덕 제 몸을 걸치고 누운 모습이? 이럴 때 철수가 무엇하는가 하면 집사 얼굴에 꾹꾹이를 한다.

[집사가 안 일어나니 같이 잠 자기로 결정한 철수 고양이]

집사 얼굴에 꾹꾹이 하는 짓은 어릴 때는 아주 가끔 하더니 요 몇 달 전부터 아침저녁으로 빠짐없이 해대는데, 이 관종 고양이가 이렇게 해야 집사에게서 더 큰 (부정적이건 긍정적이건) 반응이 온다는 것을 터득한 때문인 것 같다.

[먼산을 보는 척하는 경철군]

집사의 관심이 다시 경철에게로 향하니 빤히 보고 있던 넘이 "내가 언제?" 하듯이 눈길을 피하더니

[아무 것도 없는 곳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경철]

뭐 볼 것이라도 있는 것처럼 저 먼 곳에 시선을 고정하고 집사와 눈을 맞추지 않으려 한다. 이럴 때는 틀림없이 뭔가 있다! 이런 의심이 들면 철수의 얼굴 꾹꾹이까지 꿋꿋이 견뎌내던 집사도 벌떡 일어나지 않을 수 없다.

[경철군이 씹어 놓은 비닐봉지]

솜씨 한 번 대단하다! 이것은 어제 밤에 지끈 휴지통을 짜 보려고 속 비닐을 가져다 사이즈를 맞춰 본 다음 생각 없이 방치해 놓았던 것인데 그것을 이렇게 꼭꼭 씹어 마치 비닐봉지에 손잡이라도 달린 것처럼 자연스러운 곡선에 일정한 무늬까지 넣어놓은 것이다.

[다행히 비닐을 먹지는 않았다]

혹 티슈 조각이 뭉쳐진 것은 아닐까 흐린 눈에 그리보이기도 해서 만져보니 침이 잔뜩 묻어 있고 그 끝이 비닐 몸체에 붙어있는 것이 비닐을 씹은 것이 틀림없다 흑흑... 이 녀석은 집사의 얼굴에 꾹꾹이 해 깨우는 대신 이런 사고를 쳐서 집사에게 조용히 한 방 거하게 먹인 것이다.

 

그나저나 집사는 10 년째 수면부족... 철수가 애초에 깨우는 시각은 6시인데 그나마 집사 리듬에 길이들어 9시까지 늦춰진 것이다 - 그러고 보니 9시까지 아이가 비닐을 씹어도 모를 만큼 잠에 빠진 집사도 어지간하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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