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랑 고양이 두 마리 모시면서 서열 운운 하는 것이 적잖이 우습게 여겨지지만 집사에게는 두 녀석 똑 같이 귀한 존재여서 힘의 균형이 깨져 어느 한 쪽이 서로의 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받게 될까봐 좀이라도 기울지는 꼴을 보면 또 그렇게 속이 상하는데,
우리집의 일상을 하루만 살펴보면 철수 고양이가 당당히 대장 자리를 치지하고 있다는 것이 한 눈에 드러난다.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밥 먹는 일에서 만큼은 30% 정도 더 작은 몸으로 태어난 경철 고양이가 철수의 덩치를 앞지르면서부터 제 형의 밥을 끼니마다(정말이지 매 끼니마다) 빼앗아 먹기 시작한 것이 내게는 늘 의문스럽기도 하고 고민거리였다. 혹 경철 고양이의 밥이 모자라 그런 것이라면 이해가 가지만 전혀! 제 밥에 얹어진 냉동건조 고기만 걷어먹고는 곧바로 제 형에게로 건너 와 "네 밥 내가 좀 먹을게~" 하니 환장 할 노릇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궁여지책 위 그림처럼 이렇게 완전히 다른 장소에 떨어뜨려 밥상을 차려주는 일이 일상이 됐는데
문을 닫고 공간을 완전히 분리 해놓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집사가 잠시 한 눈을 판 사이 이렇게 소리소문 없이 밥의 임자가 바껴 있는 것이다 -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우리집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인지 아무리 돌아다니며 자료를 헤집어 봐도 똑 떨어지는 답을 찾을 수가 없었는데 좀 전에 '세나개'를 보다가 설전문가의 말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정답을 얻었다
동물들이 서열을 정하는 법
그의 설명은 동물들의 서열이란 것은 만사에 일정하게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상황마다 달라지는 것이어서 예를 들어 사람의 경우에도 운동을 잘 하는 사람이 스포츠 등의 행사에서 저절로 리더십을 발휘하고 거꾸로 운동은 못하지만 공부에 강한 사람이 스터디 그룹에서 자연스럽게 주도권을 잡듯이 댕댕이들의 세계에서도 같은 규칙이 적용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 고양이 형제의 경우에는 몸과 힘 쓰는 기술이 좋은 철수가 몸싸움에서는 우위를 차지하고 식욕과 소화력이 툭하면 토하는 철수에 비해 월등히 좋은 경철이는 먹는 자리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다
경철 고양이, 이렇게 집사 눈치를 한 번 보고 곧장 제 형 밥그릇으로 가는 게 일상이다
"아하!"
이 경우에는 답을 안다고 아이들의 행동을 교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왜?"라는 의문이 해소 돼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즈들끼리 각 자의 재능에 따라 말 없이 서열을 정하는 것이었으니 사람의 고민으로 해결 될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집사는 안주도 없는 막걸리 한 병을 갖다놓고 홀로 생일을 자축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무엇이 또 후다닥투다닥 하길래 술상 찍다 말고 카메라를 돌려보니
이미 볼 만한 상황은 지나가고 한 녀석은 "나 아무 짓도 안 했어여~" 다른 한 녀석은 "엄니, 나 점 살려 주씨오~" - 싸운다고 한 번도 누구 편을 들거나 다른 하나를 혼 내거나 한 적인 없는데도 이런 눈빛들을 보이는 건 뭐니뭐니 해도 역시 서열상으로는 집사가 짱을 먹은 것인가 싶기도 하다
기운 센 형아가 집사의 카메라질로 김이 빠져 물러나자 "이때다!" 후다닥 뛰어나와
밥그릇으로 직행! - 이럴 때는 배가 고파서 먹는 것이 아니라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 불문율이 고양이에게도 철저하게 적용되기 때문인데 어떤 처철한 싸움 중이었다 해도 한 녀석이 밥 먹는 시늉을 하면 그 동안은 반드시 휴전이다 - 이러니 인간들이 짐승보다 못하다는 소리를 듣는 것일 게다. 서럽게 밥 먹는 사람의 얼굴을 국그릇에 처박는 부모나 형도 많으니 말이다
동생이 동굴에서 나오는 걸 보고 다시 공격하려던 철수도 경철이가 "나 밥 먹는다묘~"하자
말 없이 돌아서서 자리를 비켜준다. 그러면 전쟁이 끝난 것일까?
천만에! 요행히 경철 고양이가 정말로 배가 고파 오래 식사를 했다면 철수 고양이도 전쟁 중이었음을 잊었을 텐데 짐짓 배 고픈 척만 했기 때문에 그 연기도 오래 할 수가 없었던 지라 다시 형의 마수에 걸려 들 뻔한 상황을 간신히 피해 이 번에는 동굴까지 가지도 못하고
이 날따라 청소도 하지 않은 의자 밑으로 간신 기어 들어 위기를 모면한다
숨도 크게 못 쉬고 엎드려 있는 듯한 이 표정만 보면 세상 누가 제 형 밥 뺏아먹는 양아치 짓을 하는 냥아치라 믿겠는가~
대장 고양이, 어슬렁어슬렁 주변을 돌면서 공격할 포인트를 찾다가 여의치 않으니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튀어나오는 놈을 덮쳐보려는 계산인 것 같은데
의자 아래로 숨어 든 놈은 나올 생각이 1도 없어 보인다
"야, 치사하게 숨어있지 말고 사나이답게 한 판 붙자, 나와!"
"내는 안 할란다묘~"
이 번에는 반대 방향에서 적군이 튀어나오는 순간을 노리는 전략가 고양이
이 치명적인 뒷태는 얼핏 얌전히 앉아 있는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저 앞쪽으로는 으르렁끄르렁, 하앍! 하얀 털이 난분난난분~
좁고 낮은 곳에 숨은 놈에게는 제 아무리 지략가라 한들 별 방법이 없다 - 한참의 옥신각신 끝에 철수 고양이가 제 풀에 물러나니 나름 치열한 전투를 치뤘는지 넋이 나가 사팔뜨기가 되기 직전의 하얀 고양이
그 와중에도 자존심은 있어 아무렇지도 않은 척이 하고픈 걸까, 공연히 제 형이 똥꼬를 대고 앉았던 자리에 코를 대고 킁킁~
이제는 끝이 났겠거니 생각하고 밀실에서 빠져 나오려던 찰나, 아이고야~ 다시 제 형과 눈이 딱! 마주치고 말았네
"아이고 나 죽었소~" 세상 처량하고 연약한 표정을 지으며 빠져나오던 모습 그대로 들었던 엉덩이를 놓고 얼음이 돼 버렸다 - 이 고양이가
이런 표정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찍! 소리 하나 내지 않고 제 형아 밥 약탈질을 일삼는 그 고양이 맞재? 철수는 또 어떻고 - 저 표정만 보면 만날천날 버르장머리 없는 동생한테 당하고 사는 완전 기 죽은 형 고양이인줄?
그래, 느들 그 표정 뒤에 숨은 진실은 서열에 대한 해답을 얻어 오래만에 마음이 홀가분해진 집사 혼자만 알고 있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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