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 지영이 처음 만난 날

길고양이 지영이 처음 만난 날

고양이두마리 2012.06.22

해질녘에 철수군이 창가에서 또 골똘해 있었다. 하악질도 채터링도 할 줄 모르는 얼뜨기니 뒤태만 보고도 직감적으로 뭔가 있다고 느껴주는 나의 센스!

창 밖을 주시하는 얼룩 고양이

좀 전의 바로 그 모습은 아니지만 대충 이런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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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히 카메라를 준비하고 둘러 봤더니 방충망 사이로 찍어 아아 꼬라지가 저래 나왔지만 꽤 예쁜, 아깽이를 이제 조금 벗어난 듯한 어린 아이가 담벼락 위에서 발견 됐다. (내 눈에만 어린 아이였지 그 때 지영은 이미 산전수전 다 겪은 아줌마였다.)


그런데 이 녀석, 두리번거리다 나와 눈이 딱! 마주쳤는데 빤히 마주본다. 그래서 눈인사를 껌뻑 해 주고는 "아이, 예뻐라" 하니 지도 눈을 껌뻑 하더니  쪽지붕 위에서 졸기 시작. 이럴 때 해야할 건 뭐? 돌 던져 쫓아 버리기!!!


이쪽 방충망은 열리지 않게 단단히 막아 놓았기 때문에 열고 먹이 한 번 줄 수도 없는 사정이고... 아이가 담벼락을 타고 조금만 더 와 준다면 저 쪽 창은 방충망이 안 잠겨 있으니 열고 줘도 되겠다는 생각에 비닐 봉지에 급히 사료를 담고 끈을 매달아 내리기로 했다.

길고양이 3

이 녀석, 뭔가 눈치를 챘는지 허둥지둥 하느라 몇 분이나 지났을 텐데 (사진 시간을 보니 9분이 지났다.)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가 영리하기도 하지, 비닐 봉지를 내려주니 단 번에 달려온다.


살짝 의심스러운 태도로 사료에 접근 하길래 "아기야, 먹어, 먹어도 되는 거야" 최대한 높고 가늘은 목소리로 - 고양이가 이런 소리를 좋아한다니 - 말했더니 마치 알아 들은 것처럼 대그빡을 쑤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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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올려다 본다, 좀은 의심스러운 것인지... 또 눈인사를 해주고 "먹어, 먹어" 하니 확실히 말을 알아 듣는 건지 먹고, 올려다 보고, 다시 먹고를 반복한다.

5길고양이

그런데 먹는 모습이 허겁지겁이 아니어서 - 이 동네에 캣맘이 있는 것 같은 정황이 있긴 하지만- 배가 덜 고픈가보다 해서 별식이라고 황태채를 두 개 던졌더니 낯선 게 던져지면 피해야 할 텐데 빤히 올려다 보고 있다가 한 놈 잽싸게 물고는 바람처럼 휘리릭~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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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면을 텄으니 정식으로 밥그릇을 만들어 제대로 줄 요량으로 플라스틱 그릇에 끈을 꾀고 있자니 창 밖에서 "엄마아~" 한다. 허거걱~ 밖은 이미 어두워져 아무 것도 안 보이는데 우짜노, 엄마~ 하고 부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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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황태채를 한 줌 들고 대충 조준해 떨어뜨렸더니 아랫집 창고 지붕 위로 파다다닥 하는 소리가 들리고... 거기까지 좋았다.

길고양이 9

좀 있자니 밖이 난리가 났다. 엄마아~ 하던 그 아이 뿐 아니라 못 듣던 어른 머스마 괭이 소리에 젖먹이 소리까지, 이 녀석 어둠 속에서 찍힌 태를 보니 혹시 애 엄마일지도... 황태채는 아직 2, 3개 남아있고 사료를 봉지째 물고 갔다. 또 잠시 후에 머스마 하나가 조오기 보이는 파이프를 딛고 섰는지 바로 창 근처까지 뛰어올라 우왕, 우왕 하길래 "아가, 지금 떠들면 안 돼. 내일 줄게~" 하고 창을 닫았더니 알아 들은 게 틀림없다, 조용~해졌다.


우리집 얼뜨기, 닫힌 창 안에서 이리 뛰고 저리뛰고 안절부절~ 경철군은 들리지 않으니 무슨 일인지 관심도 없다.
눈치 없는 아깽이는 아직도 날카로운 소리로 울며 주변을 돌고 있는데 사료를 더 내려줘야 할지 내일 날 밝을 때까지 내비둬야 할지 . 봉지째로 물고 가는 걸 보니 그릇 만들 것 없이 매일 매일 봉지를 내려 놓으면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10 길고양이

그런데 아그들아,
눈치없이 엄마아~ 하고 다니면 우리들 모다 입장이 상당히 곤란해진단다. 시침 뚝 따고 드나드는 방법을 생각해 보자꾸나, 으이?
아깽이가 발악을 하며 돌아다니기 시작하니 가슴이 두근두근, 혹 무지한 사람들이 시끄럽다고 쫓지나 않을지, 혹시 내가 괭이와 살아서 자아들이 꼬인다고 탓이나 하지 않을지... 캣맘은 아무나 하나...

 

컴팩트하게, 요점만 간단간단! 외치며 줄이고 또 줄였다고 생각 했는데도 다 써놓고 보면 횡설수설 장황하기 짝이 없다. 늙어 미련이 많아 그런가보다. 철수 사진 한 장 등장하면 경철에게 미안하니까 줄인다고 제외했던 사진 다시 불러다 등장 시키고, 이런 노인네 짓을 연일 반복하고 있다.

 

그런데 며칠 엄청나게 습한 날씨 탓인가 곰팡이 냄새가... 연례 행사로 제거 작업 해야하는 건 알지만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는다.

마음이 계속 어수선하고 바쁘기만 한다... 2017.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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