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하루 아침엔듯 훅 낮아진 기온 때문에 창을 잘 열지 않지만 아침 청소 시간에는 활짝 열리게 되는데
이 집은, 창 밖으로 지나는 저 전선이 고압선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줄이 굵어서 까치 같은 큰 새들도 예사로 줄줄이 앉아 있는 일이 잦다. 그러나 철수 고양이 창틀에 놓인 바구니에 나앉아 관찰 하기에는 좀 추웠던지 이렇게 까치발을 하고 두 손은 창틀을 짚고 고개만 도리도리, 엉덩이 움찔움찔 지저귀는 새들에게 집중 하다가
네 발 짐승이라 두 손을 받치고 있다해도 서 있는 게, 게다가 까치발로 서 있는 게 힘들었던지 영락없는 미어캣의 모습을 하고 잠시 육체의 휴식을, 그러나 그의 관심사는 여전히 바깥의 까치.
그러다 까치가 훌쩍 저쪽으로 날았나보다, 벌떡 일어서서 고개를 쭈욱~ 역시 까치 사냥에는 까치발이 진리여~
"헛! 그런데 이건 무슨 소리?" 매의 눈으로 휙 돌아본다. 새보다 더 강렬하게 이 고양이를 유혹하는 소리가 난 모양이다
집사가 미처 뒤로 물러나 초점을 맞출 새도 없이 휘릭 뛰어내린다
철수 고양이 손에 잡힌 저 핑크빛 물건은 집사 귀마개다 - 여름 등, 창을 오래 열어놓는 계절에 바깥에서 올라오는 짜랑짜랑한 아이들 소리와 온갖 소음에 뇌가 갈라지는 것 같은 스트레스를 받아 더러 사용하는 물건인데 오늘 아침, 좀 샅샅이 청소를 하던 중 저 물건이 갑툭튀! - 원래는 경철이 먼저 발견하고 갖고 놀고 있었는데 집사는 까치발 고양이 사진 찍느라 그 장면 찍는 걸 놓친 것이고 까치발 고양이는 경철 고양이가 후다닥투다닥 뛰는 소리에 돌아보고는"앗, 사냥 못하는 새 구경보다 재밌어 보인다"며 뛰어내려 가로챈 것이다
경철 고양이 앞에 있는 걸 툭툭 인터셉트 해 저 혼자 보기 좋은 장소로 몰더니 이것이 무엇일까 골똘한 모양새다
졸지에 장난감을 뺏긴 경철 고양이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옆에서 알짱거리니 아예 입에 물고 위치를 바꿔
저~쪽으로 드리블 해 피한다. "쟤 뭐야?" 순식간에 장난감을 빼앗기고 황당한 표정의 경철 고양이
그렇게 이리저리 물어서 던지고 털장갑 낀 손으로 온 방안을 드리블 하고 다니다가 책장 밑으로 들어가려 하니 섬세하기 짝이 없는 손놀림으로 살살 달래서 넓은 곳으로 몰아내오는 기술을 발휘하더니
앗싸! 강 스파이크! - 오늘 최고의 샷이 나올 수 있었는데 초점 바꿀 시간이 없어서 아쉽!
그렇게 강 스파이크로 멀어진 사냥감을 다시 순식간에에 공격해 한 방에 보내버리려는듯 침대 밑에 숨어들어 맹수의 표정으로 기회를 노리고 있는데
아따, 이 눈치 없는 하얀 고양이 좀 보소 - 즈 엉아가 침대 밑에서 기회를 노리고 있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무심~히 끼어들어 "에띠에띠, 이리와~" 해보다가 사냥감이 청소기 흡입관 밑에 끼어 잘 움직이지 않으니 시들한듯 이내 자리를 피하고
손톱이라고 치면 경철 고양이가 깎는 걸 싫어해서 철수 고양이 것보다 훨씬 더 긴데, 긴 손톱 고양이가 포기한 것을 짧은 손톱 고양이가 툭툭톡톡 건드려 기어이 빼내고야 만다
그 어려운 걸 해 낸 훌륭한 고양이의 표정!
음... 자꾸만 입으로 가져가는 게 한 입에 삼키기 딱 좋은 사이즈라 미덥잖은 집사, "이거 내 거야"라는 핑계로 사냥감을 회수하고 과자로 꼬드겨 캣휠을 몇 바퀴 돌리게 한다 - 웬 떡이냐! 분홍색 귀마개 덕분에 오늘 오전 놀이 시간이 집사에게는 거의 공짜로 지나갔다
그리고 집사가 청소를 마치고 앉으면 어김없이 다리를 배고 따라 눕는다. 눈에는 졸음이 한 가득
후아압~ 하품
하품 한 방에 이미 영혼이 반 쯤 빠져나간 눈빛이다 (그런데 고양이는 누운 상태에서 하품을 하면 어김없이 두 손이 깡총!)
잠이 온다, 잠이 와~
명랑하고 귀엽고 똑똑한 내 고양이, 두 손을 깡총! 얌전히 모은 채로 달콤하고 평화롭게 낮잠에 빠져 들었다 - 순진한 뒷태로 창 밖의 새들에게 움찔움찔 하다가 문득 발견한 콩알 만한 물건에 홀려 한참을 즐겁게 논 다음 나른하게 낮잠에 빠지는 이런 일상이 소확행이지~ 그러나 고양이가 없으면 불가능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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