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 밖 고양이와의 첫 만남

2012년 4월 29일
창문 밖으로 낯선 남자 사람만 봐도 사냥을 하겠다는 건지 난리가 난 듯 온 집안을 뛰어 다니길 잘 하는 경철군,

또 저런다. 창 가에 잘 앉아있다가 소스라쳐 내달리기.

길고양이를 본 집고양이의 반응 1

놔~~~ 여기는 왜 기어 들어가니?

길고양이를 본 집고양이의 반응 2

역시 여기를 뚫고 기어들어가면 창문이 나오기는 한다만...

길고양이를 본 집고양이의 반응 3

그런데 철수 반응이 지난 번과는 다르다, 경철이를 나무라지 않고 창 가에 스윽~ 가서 내다본다. 날뛰던 경철이는 오히려 무덤덤해졌는데 이번에는 철수가 갑자기 아르르~ 아르르~  이건 심상찮은 무언가가 있는 게 틀림없다.

담벼락 위에 앉은 길고양이 1

그래서 얼른 창 밖을 내다 봤더니, 길아기 한 녀석이 담벼락 위에.. 철수가 계속 아르르~~ 하니 뭔가를 느꼈는지 이 쪽을 유심히 살피길래 일촉즉발, 밖에 있는 녀석은 하악질을 할 것이고 우리 철수씨는 곧 곱사등이에 털부풀리기 하겠구나 했는데...
요누무 당돌한 길아기 시키가 철수를 살살 살피면서도 마치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얼굴인냥 너무나 태연자약이다.

담벼락 위에 앉은 길고양이 2

사람이 나타났는데 접수도 안 한다. 캣맘을 해야하나, 이 전에 살펴 봤을 때 이 동네에도 헌신적인 캣맘의 흔적이 여기저기
보였는데 그 영향으로 사람이 그리 두렵지 않은 모양이구나 싶었다. 이리 저리 고개를 돌려가며 지 등짝도 한 두 번 할짝거리고 뭐 놀 거리 없나 살피고만 있으니, 철수씨 아르르, 억수로 민망했지 싶으다.

지붕 위 길고양이

길아기, 뭔가를 발견한 듯 자리를 옮기는데 우리집 얼뜨기들, 이 쪽 방향으로 아이가 가까워지니 숨소리도 못내고 점점 찌그러진다. 지금 생각하니 이 쪽에서 완전 집중하며 쳐다보고 있어서 좀은 뻘쭘했을까 싶기도 하지만,

지붕 위 새를 쫓는 길고양이

아이가 지붕 끝에서 냄새 맡고 있던 그 때 마침 이쪽 나무에서 새가 울며 푸득 날아오르니 거침없이 이쪽으로 와 새를 향해 뛰어 오를 자세를 만드는데 마침 나무에 가려져 버렸다.  자리에서 아이는 훌쩍 뛰어내려 가버리고... 아쉬움이 남는 만남이었다.
머 괭이들이 만났다고 짝짜꿍을 하겠는가만은... 이 집 시키들이 그렇게나 암 것도 아인 걸로 보이더나, 췌!

길고양이가 떠난 후 허탈한 집고양이들

이 아이가 사라지니 철수도 흥미를 잃고 자리를 뜨는데 이 놈 저 놈 모두가 짠해져 기분이 성치 않았다... 한 녀석은 자유롭게 새를 쫓을 수 있는 대신 그 어떤 보호도 받지 못하고 또 다른 녀석은 과잉이랄만치 보호를 받지만 감옥 같은 생활을 하고... 저 녀석, 이 쪽은 단 한 번도 더 돌아 봐주지 않고 훌쩍 가버린 건, 갇힌 눔들, 흥미 없어! 이런 개무시가 아니었을까,
사람은 그 녀석이 새를 향해 훌쩍 뛰어내리던 그 순간에 느꼈을 자유로움을 감전처럼 되느끼며...

다음 날인 2012년 4월 30일 15시 18분
경철씨가 방금 또 투다닥, 후다닥 하시길래 내다 봤더니 내가 맨 눈으로 내다볼 때는 즈들끼리 눈 맞추고 있었는데 나와 눈이 마주치자 외면.이쪽을 몇 번 더 돌아보더니 어제 뛰어내렸던 그 자리로 향해 간다.

담벼락 위에 앉은 길고양이3

어제, 짝짜꿍도 한 번 안 하고 황망히 떠난 게 이 인간 때문이었구나... 그렇다고 안 내다 볼 수도 없잖어, 아이들이 방충망을 뚫기라도 하면 우짜라고... 방묘문, 그거 아이들 시야 가릴까봐 미루고 있는데 해야하나, 그러면 저 아이한테 미안하고 어쩌고 저쩌고... (이 때는 집아이들이 방충망을 뚫고 튀어나갈 수도 있으려니 공연한 걱정에 노심초사하던 무렵이었다.)


또 마음이 꽁기꽁기 복잡해진다, 심심하고 생각이나 찾아 왔을 텐데 방충망을 못 열게 접착같은 거 해 놓은 지라 간식 한 덩이도 못 던져주고... 대낮부터 주책스럽게 눈물이 나려한다...


2013년 7월 10일 첨언
그 동안 수 없이 많은 길고양이들이 저 담벼락 위에 나타났다 사라졌다 했겠지만 '아, 길고양이'라고 의식을 했던 것이 이 날 처음.
쓰다보니 2011년 8월 마지막 날에도 봤던 기억이 있다. 그 날 내가 그 아이에게 참 못쓸 짓을 했던 것이 그 때라면 철수도 내게 온지 보름 남짓 밖에 되지않아 이곳이 익숙하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늘 눈 앞에 보이던 아이가 갑자기 사라져 좁은 집구석 여기저기 찾아다니다 보니 철수가 어두운 창가에 석고상처럼 굳어, 온 몸에 털이란 털을 죄다 세워 번개 맞은 꼴을 하고서는 내가 가까이 가 말을 붙여도 못 듣는지 그 자세 그대로!


나도 처음 겪는 일이라 무슨 일이랴, 는 마음에 아이의 시선을 따라가보니 바로 창 아래, 손만 뻗으면 닿을 듯한 곳에 길고양이 한 마리가 뙇!

지붕 위의 아기 길고양이

(이것은 후에 만난 당돌한 아깽이 까꿍이 사진이지만 딱 이런 상황이었다.)


왜 그랬는지, 아마 철수가 기절초풍할 듯한 자세로 굳어 있어 그랬음이 분명하지만, 철수를 끌어안고는 창문을 꽝! 제 정신이 돌아온 후 그 아이에게 얼마나 미안했던지 집에 돌아가 어떤 늙수구레한 여자에세 박대 당했다고 아마 울면서 일기를 썼을 거라고, 미안하다 미안하다... 했었다.이 후로 위의 아기도 밤에 봤던 그 아이도 다시는 보이지 않았지만 이 경험들이 계기가 돼 두 달 후 지영이와의 인연이 시작된다.


오늘도 변함 없이 그립고 미안한 아이들이다. 지금은 길고양이를 안 후 세 번쩨 집에 살고 있는데 더 이상 아이들을 아는 척하지 않는다. 애정이 식어서가 아니라 책임지지 못하고 자꾸만 떠나는 그 짓을 더는 하고 싶지 않아서다. 아이들 소리가 밖에서 올라올 때마다 미안함에 갈등을 겪지만 아직까지는 잘 버티고 있다. 서로 얼굴 익히는 것이 이리도 두고두고 오래 마음에 남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2017.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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