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클레오와 함께한 23년, 그 치유의 길

고양이두마리 2013.03.08

지난 주에 이웃블로거인 징징이님(출판사 해든아침 편집장)께서 "클레오"라는 책을 신간이라시며 크리스마스 같이 향기로운 차, 정다운 손글씨 엽서와 그리고 신선한 캣닢 한 줄기와 함께 보내 주셨다.

캣닢 냄새 맡는 고양이들

< 울 아이들도 애미를 닮아 책이라면 환장을 한다 크히힛!>

감동적이었던 책 고양이 클레오

<이 향기로운 차는 이미 다 마시고 없는데 책 선물을 받았으니, 게다가 직접 편집, 출판하신 책이니 읽은 소감 정도는 작성해야 할거라는 책임감이 생겼지만 두께가 두께가...408쪽!>

 

27일에 받았으니 시일이 살짝 지난 감이 없지 않지만 짧게나마 감사의 인사 대신 리뷰를 작성하고자 한다.

클레오와 함께 한 23년

클레오 (한 가족을 치유한 검은 고양이 이야기)

헬렌 브라운 저 , 이아린 역  |도서출판 해든아침| 2013.03.05     원제 : Cleo

( 이 책은 출간 즉시 영국, 호주, 뉴질랜드 등에서 베스트셀러 반열에 등극했으며 8개국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에 소개 되었다.)

뉴질랜드 태생의 칼럼니스트인 헬렌 브라운

<헬렌이 직접 구운 생일케익을 먹고 있는 롭과 죽은 샘>

뉴질랜드 태생의 칼럼니스트인 헬렌 브라운은 이 자서전적 소설 또는 에세이에서 9살짜리 아들 샘을 불의의 교통사고로 잃은 후 이어진 삶의 여정, 남편 스티브와 아들 롭과 함께 그 고통을 이기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그 고통스러웠던 과정을 세밀한 문학적 필체로 풀어내고 있다.

 

샘을 잃은 후 헬렌은 깊은 우울증에 빠져 자신을 세상으로부터 단절 시키는데 모두가, 심지어 생면부지의 낯선 사람들조차 그녀를 위로 한답시고 아들의 죽음을 언급하는 무신경함에 분노와 절망만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고양이 클레오와 리디아

<열두 살 무렵의 클레오와 딸 리디아>

그러면서도 "다른 모든 아이들은 살 권리가 있는데 왜 내 아들만 아니냐"고 절규하는 스스로의 억지스러움을 짚어내는 자신의 이성에 당황하기도 한다.가족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고통을 마주하며 지내던 어느 날 지인 중 한 사람인 레나가 어린 고양이를 안고 불시에 그녀를 방문하는데 헬렌은 자신의 아들도 지키지 못한 주제에, 게다가 그녀는 애초에 고양이보다는 개를 좋아하는 사람이었기에, 또 다른 책임을 떠안기 싫어 짜증스러운 반응을 보이지만 레나는 마치 어떤 예지력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고양이를 떠맡기다시피 아들 롭의 팔에 안겨 준다, 클레오라 불리우는 두 눈 가득 행복의 빛을 발하는 검은색의 작디 작은 아기 고양이를... 이렇게 그들의 23년 그리고 6개월간의 동행이 시작 된다.

 

나는 이 책을 "즐겨"읽었다고 말 하고 싶다.

재미있게 읽었다고 말 하기에는 그녀의 비극이 지나치게 깊었으므로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자신의 비극을 되돌아보면서 오염되고 압박된 그 때의 감정으로부터 적당한 거리를 두고 예리한 자기분석과 자기반성을 함과 동시에 읽는 이의 뼈마디 마디까지 전해지는 그 상실감의 문학적인 서술이 놀랍도록 생생해 읽는 즐거움이 있었다고 말 할 수 밖에 없다.

"..... 어쩔 수 없이 바깥으로 나갈 때마다 나는 얼마 전 겪은 비극을 들먹이며 전혀 모르는 사람을 아무 거리낌 없이 괴롭혔다

'우리 아들이 죽었어요'

우체국 창구 여직원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래요, 3주 전에 차에 치었죠, 이제 겨우 9살 밖에 안 됐는데요'

그 말을 듣고 창백해진 여직원은 갑자기 홀쭉하고 키도 더 커 보였다

그녀는 새로운 그림 우표 시리즈 광고 포스터 속으로 사라지고 싶은 듯 보였다..."

또 덧붙인다면 그 모든 비극적인 상황의 묘사에도 불구하고 읽어내리기가 어렵지 않았다는 것. 많이 읽히려면 무엇보다 읽는 이의 에너지를 지나치게 요구하지 않아야 하는 법!

고양이를 축복하는 달라이 라마

< 1992년, 달라이 라마로부터 축복을 받다>

그리고 클레오,

이 책의 심볼이자 주인공, 가죽이 남아돌고 털이 듬성듬성한, 흔히 회자 되는 이야기 속의 반려동물들처럼 불 속이나 물 속에서 보호자를 구하는 등의 영웅적인 행동을 한 동물이 아닌, 행동거지나 용모가 지극히 단정치 못하고 못난, 온통 시커먼 새끼 고양이가 갑자기 상실감과 슬픔에 빠진 헬렌의 일상 속으로 휘몰아치듯 달려들어와 샘의 사고 이 후 그녀에게 첫 (어이 없는) 웃음을 선사했으며 여리고 대책없는 천방지축, 그 존재만으로 새로운 애착과 수용, 동정심을 헬렌에게 선물한다.

 

"...클레오는 발톱을 세우고 맹렬히 공격하며 깜짝 놀란 먹잇감의 살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처음엔 어딘가 낯선 이상한 소리가 나기 시작하더니 딸꾹질 소리 같은 것으로 변했다.

....

롭과 내가 웃고 있었던 것이다..."

 

그로 인해 서서히 헬렌의 심경과 일상에 변화가 일어나고 브라운 일가는 다시 웃을 수 있게 되며 그들의 함께 하는 삶은 그 후 23년 6개월간, 천방지축 아기 고양이에서 혜안이 빛나는 나이 든 클레오 그리고 죽음을 맞기까지 수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이어지는데,

 

읽는 내내 대책없는 클레오의 해맑음과 뻔뻔스러움에 푸힛 푸힛 어이없는 웃음을 감출 수가 없었으며 그 장면의 묘사를 읽는 것만으로도 마치 클레오가 곁에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 기대하지 않았던 치유의 효과를 누릴 수 있었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자식을 잃고 헤어날 길 없는 상실감과 절망감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다 자란 어른에게 못 생긴 작은 고양이 한 마리가 첫읏음을 선사하고 남은 삶을 긍정케 하는 힘을 발휘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은가!

고양이 클레오와 작가

이 책은 얼핏 반려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만을 위한 것이라 여기기 쉽지만 그런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반려동물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살다보면 수도 없이 찾아오는 예기치 못한 상실, 배반, 상처 등을 겪었거나 겪고 있는 분들이 읽으면 저 길고 어두운 터널 끝에 서서히 일말의 밝은 빛이 비치고 있음을 보게 될 것이고, 그 길을 찾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동질의 상실을 겪지 않은 사람이라 해도 작가의 뛰어나고 치밀한 문체에 저절로 빨려들어가 가슴이 저려오는 감동적인 경험을 할 수 있으리라 확신하며 '이제 고양이나 한 마리~?' 하시는 분들에게는 '인형 같은 애완동물'에의 환상' 을 여지없이 깨주고 진정한 고양이의 존재에 대해 재미있는 방식으로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게 도와주는 좋은 지침서가 되리라 믿는다.

싸우는 고양이 형제

<싸우거나 말거나 날마다 예기치 않은 이벤트로 치유의 웃음과 포근함을 선물하는 보석같은 아이들>

 

다른 사람들은 리뷰, 근사하게 잘 작성하던데... 저는 이런 거 처음이래요~--;; 어쨌든 징징이님! 정말 감사한, 감동적인 선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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