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사춘기, 인생 최대 난관에 봉착한 내 친구에게

오래 사랑하고 신뢰하는 내 친구 M에게

며칠 전 네 딸 Y의 프사가 사라지고 배경화면에 울고 있는 소녀의 그림 떴을 때 내 가슴이 얼마나 철렁 했는지 네가 알까...? 왜 그랬냐고 물었더니 "걔 원래 자주 그래~" 네가 그랬지. 아이가 울고 있는데 태연한 저 애미 봐라...나는 안절부절 좌불안석 불안해 죽겠어서 그 녀석 프사를 다시 확인해 볼 엄두도 안 나 며칠 안 들여다보고 있다가 오늘 다시 보니 


ㅎㅋㅋ 과연, 애미가 자식을 잘 알긴 하더구나. 다시 두 눈을 "이따시"만하게 키운 뽀샤시한 프사와 어떤 가수의 음악이 몹시도 마음에 드는지 그 음악의 힘으로 버티는 요즘이라고 배경을 깔아 놨더구나. 분해, 분해~ 이렇게 멀쩡한데 애미 노릇도 안 해 본 주제에 너한테 자꾸만 잔소리 하기도 민망하고 혼자 얼마나 불안해 했는지 알기나 할까?


그런데 전화를 하거나 카톡으로 말 하면 될 걸 어쩐 편지질이냐고? 전화로는 혼자 계속 지껄일 수 없잖아. 그리고 카톡으로는 휙휙 지나가니까 다 못 읽는 부분도 많고 내가 전화기로 뭐 쓰는 걸 진짜로 싫어 하기도 해서 이런 형식을 빌리는겨.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엄니에게 못다한 말 중 일부를 너와 네 딸 Y를 핑계로 하려는 것일게야

딸의 사춘기, 인생 최대 난관에 봉착한 내 친구

그저께 일 말이야,

나는 Y에게 진심으로 답장 하지 말라고 한 것이었어. 왜냐하면 아이들은 꼰대들과 어떻게든 자꾸 엮이는 거 싫어하니까 말이야. "그런다고 어떻게 인사를 안 해?" 네가 그랬다고 했지? 하지 말라니까 안 하는 게 맞지 않니? 


엄마들은 흔히 생각하지, 아무리 저 쪽에서 괜찮다고 해도 속으로는 "아이고 자식 교육을 어떻게 시켜서 인사 안 해도 된다 했다고 진짜로 안 하냐, 싸가지가 바가지여~" 욕 할 거라고. 그래서 너는 어땠는지 몰라도 나는 참 많이도 혼 났다?!


그런데 인사 안 해도 된다 해놓고 속으로 욕 하거나 그 엄니에게 대고 "니네 딸은 답장 안 해도 된다 했다고 진짜로 안 하더라?" 이런 소리 하면 그 어른이 나쁜 거 아니야? 인사 잘 하는 예의 바른 모습을 보고 싶었으면 '답장 하지 마'를 하지 말았어야지? 뭐냐, 아이 시험 하는 것도 아니고! 만일 그런 일이 생기면 아이를 나무랄 게 아니라 어른을 나무라야지. 아이들은 어른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데, 얼마나 분하겠어, 안 그래?


시시한 선물 하나 건네고 복선 까는 어른이 있다면 진짜로 그 사람이 더 나쁜 거야. 사람은 그래야 한다고 배우고 강요 받은 우리가 잘못 배우고 잘못 된 대접을 받으며 자랐다고 나는 생각해. 하지 말라니까 안 했어! 얼마나 맑고 투명해? 어른이 태도를 바꿔야지, 인사를 받고 싶으면 "마음에 드는지 알고 싶어, 알려 줘~" 하면 아이도 인사를 했겠지?


내가 모처럼 쿨한 이모 좀 해보려 했는데 애미라는 할망구가 산통을 다 깼어! Y에게 전해 줘, 이모가 괜한 짓을 해서 저 혼나게 만들어 미안해 한다고...

정상이 아니라고?  난 네 이 말이 가장 우습고 귀여웠어! 고2 사춘기 소녀가 정상이 아닌 게 정상 아니야?

정상이 아니라고?

난 네 이 말이 가장 우습고 귀여웠어! 고2 사춘기 소녀가 정상이 아닌 게 정상이지 않니? ㅎㅋㅋ


하기 좋은 말로 "나는 안 그랬어" 하지 말어~ 30년 동안 봐 온 네 모습을 봤을 때 너는 다분히 안 그랬을 수 있어. 그런데 네가 한 가지 간과한 게 있어. 


세상이 달라지고 세대가 달라져 그렇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야. 그런데 대부분의 엄마들이 인지 못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있는데 "나는 안 그랬어" 왜? 환경이 다르니까! 내 딸이라고 나와 같은 환경에서 산다고 생각하고 있는 게 가장 큰 실수 아닐까 싶어 


Y의 환경은 내가 봐도 너와는 달라, 달라도 아주 많이 달라. 그러니까 행동양상도 너와 다른 게 당연한 일이자너. 그리고 그래서 네가 느꼈던 결핍과 Y가 느끼는 결핍은 전혀 다른 것일 가능성이 아주 높아. 네 말마따나 비정상적인 짓만 하고 돌아다닐 때는 네가 모르는 이유가 있을 것 같아 - 그러니까 너는 겪어보지 않아서 짚을 수 없는 그런 것 말이야


내가 언제 날 잡아서 Y한테 니네 엄니 욕 좀 해보라고, 안 이를 테니까 네 편 들어 줄테니까, 라며 말을 붙여보긴 할 생각이지만 이것도 기술이 필요해서 워밍업 중이여, 얘기 좀 해 봐~ 하는 네 말을 흘려 들은 건 아니라는 말이지

유난히 손이 작고 예쁜 내친구!

유난히 손이 작고 예쁜 내친구!

이렇게 소제목을 붙이면서 갑자기 눈물이 핑 도네. 바흐의 무반주 샤콘느였나? 무대에서 그 작은 손으로 겹음이 넘쳐나는 그 곡을 연주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고 저 지지배 짜증 부리고 있구나~" 조마조마 했던 기억, 그 작은 손으로 연속 되는 겹음을 처리하느라 얼마나 힘들었겠어... 그런데 네 손이 그렇게 작았다는 것도 잊고 있었네...


그 때는 "비정상적인" Y도 없고 우리도 젊고 예뻤는데, 그리고 주어진 곡만 어떻게든 잘 해내면 그게 전부였는데 언제 저런 늦둥이가 하나 생겨서 늙은 애미 속을 이렇게나 태운디야...


난 말이야, 아이 때 엄마에게서 눈꼽만치도 관심을 못 받았다고 생각 했는데 울엄니는 돌아가시는 그 날까지 "네 냔에게 난 최선을 다했어!"라시며 육두문자까지 날리셨지. 그러셨을거야 나도 부인 안 해. 다만 그 최선이라는 것, 관심이라는 것이 자신의 입장을 기준으로 베풀어진 것이기 때문에 내 입장이라는 건 손톱만치도 고려되지 않았던 것이 문제지.


나처럼 늘 엄니의 부속품으로 아이가 아이로서의 대접을 못 받고, 좀 자라서는 독립 된 존재로서의 대접을 못 받고 엄니 가치관대로 움직여야 한다면, 위에 말 한 어른들의 복선까지 잘 대처하며 살아야 한다면 조금이라도 자아가 있는 아이는 저 혼자 버텨보려 아등바등 하다가 모가 나다 못해 송곳 같은 인간이 되기 십상이야. 게다가 저 혼자 힘으로 자존감을 세우는 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과 노력이 드는지 아니? - 네가 Y에게 그런다는 얘기가 아니라 그럴까봐~


여기까지 쓰고 보니 너한테 하고 싶었던 말은 딱 한 가지였네, 네 입장 빼고 아이 입장을 더 고려해 보시라는~ 너와는 환경도 다르고 성향도 다른 완전 다른 개성체니까 말이야 - 아이고 젠장 진즉에 알았으면 짧게 썼을 것을!

있어줘서 고마워~

저것이 뭐가 될까...

뭐가 되기는! - 사람 되지

네 딸이야, 그 뿌리는 어디 안 가서 나쁜 사람 안 돼! 그거면 되지 않니? 사회적으로 성공 안 해도 된다며? 밥은 먹고 살게 돼 있잖아, 쓰는 사람이 있어야 버는 사람도 있지. 정 뭐가 안 되면 쓰고 살겠지~ 나쁜 짓 않고 저 하나 행복하면 그게 최고의 사람 노릇이라고 나는 생각 해. 믿고 냅 둬 보면 마음이 편해지고 편해지다 보면 심심해지고 그러다 보면 뭔가 정말 하고픈 걸 찾아내게 될 거야. 다그치지 말어~ 백 세 시대여, 느리게 자라게 냅 둬~


있어줘서 고마워~

명령이야, Y가 미워 죽겠을 때마다 하루에 100번씩 외워! - 물론 나는 미워 죽겠는 자식이 없어서 쉽게 하는 말이야 ^^


아띠! 너무 길게 써서 사진이라도 중간중간 넣어야 M 성격에 끝까지 읽을 것 같은데 뭘 넣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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