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와, 이런 장면은 처음이지? -고양이 형제의 미스테리한 관계

우리집 쌍둥이 고양이 두 마리를 아는 분은 다 알고 계시겠지만 이 형제가 연출하는 가장 흔한 장면은 

고양이 형제의 싸움

바로 이런 것이다. 딱 봐도 덩치가 한참 더 작은 철수(몸무게 5.9kg)가 저 뚱보 경철 고양이(몸무게 7kg)를 큰 힘과 별 시간 들이지 않고 간단히 제압해

무서운 형 고양이를 피해 침대 아래로 숨은 동생 고양이

이렇게 침대 밑으로 몰아 넣는 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고 저러고도 분이 덜 풀리면 

침대 밑까지 따라 들어가 협박하는 형 고양이

공간이 낮아 제대로 공격도 어려운 침대 아래까지 기어이 따라 들어가 저 커다란 녀석 두 귀를 뒤로 바짝 눕게 하고 "단디이 하구라 잉!?" 레이저 눈빛과 함께 일갈하고 크게 봐 준다는 듯 돌아서는 건 그야말로 식은 죽 후루룩 마시기보다 쉬운 일인데!

고양이 형제가 나란히 앉아 식사하는 중

식사시간, 언제나처럼 나란히 앉아 처묵처묵 중,  이제부터는 이웃들께서 처음 보시는 장면일 것이라 "어서와, 이런 장면은 처음이지?"

얼룩 고양이, 맛있게 많이 먹어라~

철수 고양이는 성묘답게 어느 정도 배가 찰 때까지 진득하게 앉아 식사를 하시는 반면

식사 하다가 산책하고 돌아오는 하얀 고양이

경철 고양이는 쪼작쪼작 드시다가 저만치 한 바퀴 돌고 와서는 다시 드시고... 그런데 지금 어디로 향하는 것이야?

남의 밥을 탐내는 하얀 고양이

그림으로 봐도 지가 먹던 밥그릇은 저 짝에 있는데 엉뚱한 곳에 시선을 두고 진행하고 계신다. 철수가 먹고 있는 밥그릇이다! 집사, 웬만하면 고양이들 일에 끼어들지 않는데 이 일에는 반드시 개입한다. 경철이 눈치 못 채게 "경철아 이눔 시키! 어디 엉아 밥을 뺏고 그래?!" 짐짓 과장된 목소리로 혼쭐을 내는데 경철이는 들리지 않으니 집사의 개입을 눈치 채지 못하고 철수에게는 부당한 일을 당하지 말라고, 투쟁을 불사하라고 알려주려는 나름의 작전인데

서러운 표정의 얼룩 고양이

열이면 열 번 모두 잠시 버티는 정도의 거부도 하지 않고 조용히 밥그릇을 내어주고 물러나 수염도 다 아래로 늘어뜨리고 서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괭이가 나이 들면 여시가 되나, 결국 내 개입이 철수의 밥그릇 지키기를 가르친 것이 아니라 불쌍한 척하는 법을 가르쳐 준 듯

따로 밥상을 받은 얼룩 고양이

어쩔 수 없다, 내 탓은 나중에 하고 그렇잖아도 식탐 없어 안타까운 철수는 아직 식사를 마치려면 한참이나 멀었는데 저렇게 먹다 말게 할 수는 없어서 멀찌기 철수 상을 따로 차려드리고

간식 봉지를 가지고 노는 하얀 고양이

경철 고양이는 남아있는 다른 그릇까지 데려가 이거 먹으면 돼~ 며 그릇까지 톡톡 두드려 보이며 신호를 보냈으나 "싫다, 난 그 딴 거 안 먹는다"며 지가 애정해 마지않는 간식 봉지를 꺼내 

간식 봉지에 싫증난 하얀 고양이

빠직빠직 밟고 던지고 물어뜯어 봐도 간식이라곤 한 조각도 먹을 수가 없으니 "에띠, 안 되겠다!"며 또 다시 시선을 고정 시킨 그곳

입맛 다시며 침대 위로 올라오는 하얀 고양이

아주 입맛까지 다셔가며 즈 엉아가 밥 먹고 있는 그 곳으로 직진하신다. 저 눈빛이 단디이 맘 먹고 전진하고 계신다는 걸 보여준다. 누가 보면 제 것 다 먹고 모자라 저러시는 줄 알겠지만 천만에! 제 밥그릇은 반도 비우지 않고 즈 엉아 밥 뺏는 일에 열중하고 있는 것으로 실은 지금 철수가 먹고 있는 그 밥이 지가 먹다 남긴 것이다

고양이 형제의 아름다운 한 장면

나름 작전까지 다 세운 듯 곧바로 목표물을  향해 가지 않고 캣타워 위에 일 차 올라앉아 짐짓 그루밍도 했다가 먼 산도 봤다가 한참이나 딴청을 부리다가

뒤에 있는 동생 고양이를 경계하는 형 고양이

어느 순간, 이때다 싶었던가 한 발 움직여 철수 바로 뒷쪽으로 이동하신다. 철수는 먹고 있는 척해도 저 등뒤로 돌아드는 검은 아니 하얀 기운을 못 느끼겠는가, 이미 마징가 귀를 만들고 눈동자가 뒷쪽으로 집중해 있다

형의 밥을 노리는 동생 고양이

철수 등 뒤에서 며칠은 굶은 걸신의 눈으로 레이저를 쏘고 있으니 철수도 먹던 것을 멈추고 만반의 대비를 하는 눈치다. 그야말로 내 등 뒤에 검은 그림자!

이 쪽을 보며 입맛 다시는 하얀 고양이

저 눔 저거 입맛 다시는 거 봐라, 진짜로 남이 보면 집사가 고양이 두 마리 두고 한 마리만 편애하는 줄 알겠다. 어쨌거나 이런 상황을 내가 그냥 두고는 안 보니 저것이 나름 집사 눈치를 보는 것으로 보이는데...

살금살금 걸어오는 하얀 고양이

이 걸음은 집사 모르라고 하는 것인가 아니면 철수 모르라고 하는 것인가? 최대한 살금살금 스며들듯이 노트북 화면을 철수와 사이에 두고 돌고돌아

형 고양이의 밥을 뺏아먹는 동생 고양이

기회가 올 때까지 살금살금 공격은 과감하게! 고양이의 사냥 수칙을 철저하게 시전하시는 듯 드디어 목적지에 당도해서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입부터 들이미니 나 같으면 '크르르~'라도 한 판 날리겠구만 철수 고양이는 금새 얼굴을 들어 먹는 걸 포기하고 난감한 듯한 표정

밥을 빼앗긴 형 고양이의 기 죽은 표정

이 장면은 마치 원래 그 밥이 제 것이었던냥 "저리 가 임마, 고양이 밥 먹는 거 처음 봐!?" 일갈하고 남의 밥 껄떡대던 넘은 그 일갈에 잔뜩 주눅 들어 외면하는 듯 보인다. 설명 하나도 없이 사진만 올렸으면 틀림없이 그리 보였지 싶으다 - 이런 게 적반하장?

밥을 뺏기고 자리를 떠나는 형 고양이

결국 자리를 아주 비켜 주시는 철수 고양이, 그리고 당연히 제 밥인듯 한 치의 미안함도 없이 밥을 먹는 경철 고양이


이런 장면은 철수가 경철을 쥐어 뜯는 만큼이나 자주 목격되는데 나는 매 번 이 관계가 무엇일까 의문을 갖게 된다. 이런 행동이 일 이년 이어진 게 아니고 적어도 경철의 몸이 더 커진 한 살 무렵부터 시작 된 것인데 평소에는 저리 불칼 같은 성격을 보이는 철수가 유독 먹는 것만은 한 치의 거부감도 없이 쉽게 내어주는 순둥순둥의 불가사의, 그리고 반대로 몸싸움만 하면 단 방에 케이오 되는 경철이 유독 먹을 것만은 독차지 할 수 있는 저 비상식적인 배짱의 불가사의


불쌍한 표정으로 인간 동정 사는 것도, 나름 작전 세워 인간 눈치 봐가며 진행하는 것도, 이들의 행동을 살펴보면 시근은 멀쩡한데 어째서 힘의 논리로는 도저히 설명이 안 되는 이 미스테리한 게임 같은 관계가 평생토록 성립할 수 있는 것일까? - 나는 정말로 그것이 알고 싶다

다시 형 고양이에게 두들겨 맞는 동생 고양이

그리고는 또 여지없이 줘 뜯기는 경철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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