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이람서, 순덕이가 숨어사는 지하실 건물에서 건너 왔었다. 당신네 집에 안 좋은 일이 있어서 뭐라뭐라 하시는데 그냥 고양이가 싫은 사람이다,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건물 주인에게 얘기해서 순덕이를 쫓아 내겠다고까지 한다. 바람 불고 비 오는 날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에 밥을 몇 번 준 것이 화근이었던 것.
<그 아짐 쫌 이상타... 호기심에 가득차 두 발로 서서 내다보는 철수 고양이>
빨간 자동차 밑에 밥이 늘 봉지째 없어지고 현관문이 내내 닫히고 닫히고 하던 것이 다 이유가 있었던 게다. 그렇게 하면 이 추위에 다리 성찮은 아이 당장 어디서 죽을 거라고 사람이 어찌 그런 생각까지 할 수 있냐는 식으로 말 하니 비인간적이라는 걸 들키기 싫었던가 그러면 우리집으로 유인해 데려 가란다. 내 소유의 집도 아니고 나를 따르는 괭이도 아닌데 그게 내 맘대로 되나... 일단 중국집으로 건너 가 사정이 이러이러 하다, 여기 모퉁이에 정식으로 그릇 놓고 밥자리 좀 만들자꾸나, 했더니 단 번에 오케이 한다 - 단지 면전에서 거절 못하는 우유부단임을 나중에 알게 됐지만 그 때는 참 고맙고 기뻣었다 -
그런데, 아이가 지하실에서 쫓겨나게 되면??? 다리가 후들거린다, 수업도 못 하겠고 머리가 진짜로 아프다,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안압도 높아지고. 내가 사는 집 주인에게 전화한다, 안 받는다. '젠장 쇠뿔도 단김에 빼랬는데...
버럭버럭 내 성질 못이겨 학생 갈구고 있자니 "샘, 전화 하셨어요?" "예, 내가 옆집 고양이 때매 여차저차 하다, 미치겠다" "아, 그럼 우리집으로 부르지!" 이런다??? "진짜~? 난 자기 신랑이 싫어할까봐 그럴 생각도 못했다" "아이, 괜찮아요~, 걔들 단 번에 안 따라오니까 며칠 두고 조금씩 유인 하셔야 해요" "와우! ㅇㅁㅅ 짱! 어구구 예뻐라~" "내 원래 예쁘잖아예~" "으, 예쁜데 오늘 젤로 예쁘다~~~" "뒤꼍으로 유인해갖고 101호 보일러실 문 열어놓고 거기 살게 해 보이소, 거어 총각은 상관 없어예" 이런다 또!
그 보일러실이란 곳이 바로 지영이 밥지붕 아래여서 그렇게 되면 지영이 밥도 공공연하게 줄 수가 있는 곳! 우하하! 세상에 이런 일이!!! 순덕이가 말을 들어 먹을지, 지영이 밥자리 가까운 곳이라 발을 붙일 수 있을지 걱정이지만 어쨌든 해 본다. 그릇 제대로 마련하고 항상 넘쳐나게 신선한 밥이 준비돼 있으면 싸우지 않고 잘 나눠 먹을지도... (바라건데), 이제 열쇠는 순덕이가 쥐고 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스티로폼 상자를 순덕이 것까지 두 개 주문 할 걸 쪼잔하게 괜히 하나만 불렀네...
그리고 혼자 순진했던 것인지 저 때 내가 느꼈던 고마움과 감격들은 나중에 완전히 다른 진실로 드러났다. 사람의 말과 마음이란 것은 내보이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이면이 있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나도 어쩌면 자신도 모르게 그런 면을 내비쳐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있지는 않은지 요즘 겪고 있는 일들과 더불어 생각이 많아지게 하는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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