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 길고양이가 '우억'이 된 날

요즘에는 밥을 얼마나 내놔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싹싹 다 없어지길래 지영이가 아주 돌아오긴 한 모양이구나, 아이 낳을 때가 돼 가니 식욕도 도는 모양이구나, 아이는 안 보이지만 혼자서 흐뭇한 며칠이 지났다. 그리고 오늘 아침, 지붕에서 부스럭 대는 소리가 들리길래 내다 봤더니 - 요즘은 지영이 상태 보려고 신경을 세우고 듣는 편이다 -

길고양이 발정기

지영이 아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두리번거리는 모양새가 평소와는 달라보여 지영이 밥자리니까 혹 주인에게 들켜 쫓겨날까 경계하는 모양이구나 했다. 그런데 도합 3개 내려져 있는 봉지마다 냄새만 킁킁 맡고는

발정난 고양이는 입맛을 잃는다

저렇게 또아리를 틀고 앉았는 걸 모른척 하고 문을 닫아 버렸다. 아직 아깽인데 입맛 맞춰 줬다가는 지영이 짝 날 것 같다는 판단인 데다 지영이와 다리 아픈 아이만 먹는 주식캔을 모두에게 나눠 주기에는 경제적으로도 상당한 부담이 따르기 때문에. - 그런데 사실 밤마다 내려놓는 주식캔도 누구 입에 들어갔는지는 당사묘들만 알 뿐... -

창에 비친 임신한 길고양이

몇 시간 후, 방충망 통해 앞집 통유리에 찍힌 장면. 그냥 보니 지영이 같다, 저 코에 하얀 부분도 있는 것 같고...그래서 부랴부랴 주식캔을 내려놓고 '지영아, 이리 와' 했더니

발정난 어린 고양이

아이구야, 또 요 냔이!!! 야아는 이상하게 지영이 때 만큼 한 눈에 듬뿍 정이 들지 않는다. 지영이 있어야 할 자리에 나타났던 아이라 모종의 배반감 또는 박탈감을 느꼈던 탓인지... 그래도 어쩌노, 이미 내려놓은 걸 돌 던져 쫓을 수도 없는 일이고

발정난 어린 길고양이 2발정난 어린 길고양이 1

<요누무 가시나, 세워놓은 빗자루 위에 엉덩짝 걸치고 앉았음 ㅋㅋ>

용케도 캔 봉지를 골라 다 먹어버려뜸...ㅜ.ㅜ 그리고 다시 몇 시간 후, 지붕에서 부스럭 부스럭... 이 번에야말로 지영이겠거니 폴짝 반가워 카메라를 들고 내다 봤더니, 어뜨!!!

잘 생긴 대장 길고양이 1

얌마, 너는 또 여그  왜 왔어??? 눈딱지, 코딱지 하 더러바서 지영네 가족한테 병 옮길까 무섭두만 다행히 건강해 보여 고마운 마음에 - 얼마나 큰지 족히 7킬로그램은 돼 보임 - "머겅, 밥 머겅, 많이 머겅~" 했더니

잘 생긴 대장 길고양이 발정 났다

지붕 위에 있던 크고 작은 4개의 봉지를 다 모아서 드시는 걸 보고 문을 닫았는데, 경철이 "꼬르르~"하며 창 밖을 내다보는 서슬에 같이 내다보니

다시 임신 한 엄마 길고양이 1

지영이, 얼음이 되어 한 곳만 내내 주시하고 있는 장면이 목격 돼 "지영아~"했더니 퍼떡 돌아보고는

다시 임신 한 엄마 길고양이 2

이내 보던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얼음! 도대체 뭐가 있어 저리 겁을 내나, 지영이 시선을 따라가보니

암고양이를 지키고 있는 대장 길고양이

아 글쎄 그 사이 식사를 마친 이 깡패 시키가 딱! 그래도 지난 번과는 달리 밥 먹는 걸 보니 발정은 아닌갑다, 글고 지영이도 이미 임신 했으니 뭐... 했지만.

큰소리로 울며 멀어지는 대장 길고양이

다시 뒷담을 타고 어디론가 향하는 저 눔이 가면 그냥 갈 것이지 "우억! 우억!" 하며 간다. - 네 이름은 이제 우억이야, 시키야!!! - 놔~ 돌아버리겠다!!! - 고양이를 모르시는 분들을 위한 보충설명 : 숫괭이가 듣기 싫은 소리로 "우억, 우억"하는 건 발정 났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 상태가 심해지면 밥을 먹지 않는다. 여아도 발정이 나면 마찬가지로 묘하게 듣기 싫은 소리로 울며 밥을 거부한다-

발정난 예쁜 길고양이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짐작컨데 이 번에는 요 냔을 잡으러 온 것이다... 요것이 발정이 나서 밥 맛도 없고 그래 아침에 까다롭게 굴며 두리번거리고 공연히 지붕 위에 나앉아 있고 그랬구나, 그제서야 짚어지며 하나도 안가던 정이었는데 갑자기 안타깝고 아깝고 소중하게 느껴지는 조 냔...  -너, 도대체 지영이하고 어떤 관계길래 지봉이가 쫓겨 나고도 니가 남아 있니?- 이 아이만큼은 이번 가을, 겨울 그냥 넘기고 성묘가 되는 봄에나 임신을 하겠구나 안심하고 있었는데, 가을에 발정나지 말라는 법 있더냐, 억장이 무너진다... 얼굴에는 아기티가 그래도 남아 있는데...


해피로즈 2012.09.10 22:07
혹시.. 지영이 첫배 자식은 아닐까요? 지영이를 첨부터(아기 때부터) 보신 게 아니면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우억이는 천상 머스매 얼굴이네요.^^ 먹성도 좋네.. 에고~ 지영이 먹이고 싶은 캔은 딴 녀석이 먹어불고.. 지켜보고 있을라면 참 아쉽죠.. 새끼를 언제 어디서 낳을려나.. 

 

고양이두마리 2012.09.10 23:00
아닌 것이 월령이 지봉이하고 한 달 정도 밖에 차이가 안나요. -지금 한 7개월 돼 보임, 눈 색깔 보세요, 아긴데... - 그러니까 불가능한... 그리고 이 전에 지영이 자매일 것 같은 아이가 밥자리 다툼을 했었는데 아마 그 녀석의 딸인 것 같아요, 생김새가 완전 100% 싱크로. 저느므 시키, 지 지롤만 안 하면 제가 진짜로 예뻐해 줄텐데 말입니다. 잡아버렷! 이런 생각도 불끈 올라오지만... 내가 무슨 수로... ㅜ.ㅜ

 

지금 보니 저 때 해피로즈님이 하신 말씀이 맞았던 듯 한데 나는 무슨 근거로 단칼에 아니라고 우겨쓰까나, 민망한 일일세... 2017.09.04

댓글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