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길고양이 지영이

지난 밤,
다리 저는 아이 밥 가지고 내려 갔다가 양곱창 아짐에게 딱! 걸려 버렸다. 이 전부터 계속 나를 수상쩍어 하는 눈으로 살피는 눈치가 있었던 바, 오늘은 아이가 밥 먹는 걸 지켜보고 있는데 - 이 녀석 요즘은 아예 와서 기다리고 있다, 꽤 오래 기다리는지 언제 내려가도 먼저 와 계심 -

다리를 다쳐 마음 아프게 하는 길고양이

양곱창 아짐이 일부러 밖에 나와 전자모기채를 따닥따닥 휘두르며

 "누구 기다리십니꺼?" 한다.

하이고~ 내가 글키나 수상해 보입니껴... 속으로 중얼거리며

 "아뇨~, 자아 밥 먹는 거 보고 있어요, 고양이"
"아아~ 밥 줬어예?"

"밥 줘도 되지요?"
"줘야지요, 불쌍한데~"
오잉? 웬 떡이냐! 속으로 쾌재를 부르는데
"자아는 다리도 절더라, 불쌍해서 ...ㅉㅉ"
앗싸라비야!!!
"예, 발이 완전 나갔더라구요. 그래서 약도 섞어주는데 잘 먹네요"
"뭘 줬는데 저렇게 잘 먹어요?"
"고양이 먹는 통조림이요. 제가 밥 준다고 소문 내지 마세요?"
"아이고, 누구신지도 모르는데예~"
심장 근처에 따뜻한 무엇이 물컹~ 지나가 목을 콱! 메이게 했다. 적어도 다리 저는 아이 밥 만큼은 떳떳하게 줄 수 있게 돼따!!!!!!!!!!!!! 그렇게 마음이 따뜻해진 밤이었는데...픃ㄹ(경철군의 신한글 창재다, 이런 글도 써지네? @@) 2012.09.04

 

그리고 오늘 아침,
비도 오고 혹시 밥이 남았으면 중국집에서 짜증스러워 하지 않을까 조마조마하며 마실 가는 척 나가봤더니 아이가 먹은 밥자리 빈 비닐만 치우고 옆에 여분으로 놔 둔 사료봉지는 그대로~ 비둘기가 와서 평화롭게? 쪼아드시고 있었다. '아... 이제 마음 편히 아이들 밥자리 청소하러 와도 되겠구나' 사실, 누가 뭐랄까 먹은 자리에 비닐이며 찌꺼기며 나뒹굴어도 내놓고 청소도 못하며 마음 졸이고 있었던 상황을 아는 사람은 이해 하겠지만...


뭐야... 시끄럽고 무식한 사람들, 내가 시끄러운 직업을 가져 할 수 없이 들어온 동네지만 너거 진짜로 너무한다, C퐁 C퐁! 하던 내가 완전히 한 방 제대로 먹은 경험이었다. 2012.09.04

 

 밤 12시가 다 된 시각,지붕에서 사료봉지 뜯느라 노골적으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세 식구 모두 귀가 쫑긋 하도록  - 경철이도 덩달아 창 쪽으로 반응 - 들리길래 얼른 카메라를 들고... 창문을 열고 카메라 든 손이 밖으로 나가는데도 긴장하는 기색이 아닌 것은???? 얼핏 화면에 보이는 녀석은 지영이 사라진 후에 늘 오던 그 아긴데, 불을 펑펑 터뜨려도 전혀 동요하지 않고 계속 제 할 일을 하는 저 고양이는???

돌아온 길고양이 지영이1

지영이다!!!
 - 사진은 이렇게 찍혔지만 이 때까지는 완전 미확인 상태였다 - 설마.... "지영아~" 불러봐도 못 들은 척한다. 아닌가보다... 지영이는 제 이름을 아는데... 반응이 없으니 그저 당연히  아래 사진에 아기려니 했다. 그 동안 이 아이가 대신 오고 있었으니까.

길고양이 지영이

그런데 슬금슬금 도망가지 않고 태연히 제 할 일을 하는 건 이제 내가 익숙해져 그러나... 아니야, 뭔가 느낌이 달라! 저렇게 엎어져 있을 때는 발이 찍혀야 누군지 아는데, 이러면서 쉴 새 없이 셔터를 누르는 사이사이 잠깐씩 확인되는 화면에 아이가 평소보다 더 가까워 보이게 나오는 것이, 이상하다? 같은 배 수로 줌인 했는데, 며칠 새 자란 거니?

자매와 똑 닮은 길고양이 지영이

더 자세히 찍어 확인하고 싶었지만 저 새로 오는 아기는 오래 방해 받으면 가버리기 때문에 조마조마해 하며 문을 닫았다. 그런데, 컴퓨터 화면으로 확인 된 저 요망하도록 예쁜 얼굴은??? 그랬다, 만삭인 지영이가 제 집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망할냔, 망할냔... 내 눈에서 눈물을 얼마나 빼고...

지붕 위 길고양이

사진 제대로 확인하자 마자 지영이가 먹는 밥이면 저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 주식캔만 따로 싸서 내려놨는데 지영이에게 돌아갈까? 아침 저녁 모두 주식캔을 줘야하나, 또 구더기 끓으면 우짜지, 머리가 복잡하지만 아이가 돌아온 기쁨이 훠얼~씬 더 크다, 이틀 연속 마음이 설레는 꿈이 꿔지더니 지영이가 나타나려고 그랬나보다.  ^___________^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저 나 보기가 역겨워 떠났다 옛정을 못 잊어 다시 찾아온 걸로 정리해야겠다. 그리고 아이 낳을자리는 마련 했는지, 열흘 이쪽 저쪽으로 출산인데 -  아무 때라도 먹을 수 있게 봉지를 여러 개 내려 놓아야겠다. 2012.09.05

 

SHOW! 끝이 없는 거야~

이 포스트를 편집하다 떠오른 노래. 발 잘린 순덕이와 양곱창 아짐, 그 때는 몰랐는데 지금에 와서야 퍼즐이 맞춰지는 무엇이 있어 떠오른 것일게다. 당시 시점에서 겨울이 오면 이 노래가 떠오른 이유가 밝혀진다. 그런데 그 때는 몰랐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듣고 무엇을 믿으며 살아야 하는 것일까, 60에 더 가까운 이 나이에도 답이 없는 질문이다. 2017.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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