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외로울 땐 나를 불러주세요~

비누바구니 2021. 10. 10. 15:12

혹시나 해서 전화기를 열어 날짜를 확인해보니 내 등에 칼이 꽂힌 날이 9월 15일이었다. 오늘이 10일이니 거의 한 달이 지나간 셈인데 다행히(?) 나는 여전히 살아있고 등에 꽂혔던 칼은 뽑혔다. "어떻게?"라고 묻고픈 분들이 혹 계실까 잡글을 써본다.

 

말 그대로 등에 칼을 꽂고 이걸 등치기를 해서 더 깊이 박아 넣어 관통을 시켜야 하나 아니면 내 손으로 뽑아야 하나, 스스로 뽑기에는 참으로 위치가 애매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가게 차린다고 이런 일 저런 일들은 처리를 해야만 했기에 여러 관공서 사이트들을 드나들면서 내 지역 구청의 한 부서가 눈에 띄어 전화를 했었다.

[1393은 생명의 전화]

물론 내가 전화한 곳은 1393이 아니다. 왜냐하면 여기에 내 가까운 혈육 중 한 분이 자원봉사하고 계셔서 그 수준이 익히 짐작이 가기에 배제를 했고 대구이기 때문에 053으로 시작하는 번호에 전화를 했다. 멀쩡히 잘 사는 이들은 참으로 우습겠지만 땅도 꺼지고 하늘도 무너진, 오래전 "당신은 부모도 없고 형제자매, 친구도 없소. 말년이 아주 비참할 것이오"라던 예언을 현실로 맞은 사람에게는 이런 전화라도 하는 것이 전혀 우스운 일이 아니었다.

 

아주 어린듯한 여성이 전화를 받았길래 그냥 주절주절 (어차피 전문가가 아니라는 걸 아니까) 그런데 왜 내가 예비 자살자로 뽑혀 버린 것일까, 난 그냥 법적으로 어찌하면 "무연고자"로 죽을 수 있는가를 알고 싶었을 뿐인데.

 

그런데 몇 시간 후에 전문적으로 사회복지사 공부를 한 분이 틀림 없다는 느낌을 주는 이 분이 전화를 해왔고 한참 동안의 통화가 끝난 후에 그분이 보낸 문자 메시지가 저 위의 그림인데 짐작했던 대로 역시 이 모두가 시스템적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말이다,

[이런 넘을 무슨 스틸러라고 해야하지?}
[원래는 이걸 찍으려고 했다는]

옛날에는 양키시장이라는 곳에나 가야 살 수 있었던 버드와이저를 7.11에서 사 마실 수 있는 좋은 세상이다. 딱 그만큼 세상도 좋아져 이 사회복지사께서 내가 누구인지도, 더불어 내 처지를 확실하게 아는 것도 아니고,  (세상살이 60의 짬밥이 이런 데서 나온다) 이 분은 직업이니까~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한참 동안의 대화를 하고 나서 등에 칼이 뽑혔다는 느낌을 받게 된 것이다. 교육에서 나오는 나지막하고 어루만지는 듯한 어투와 (물론 천성, 적성에 맞아야 이런 일을 하시겠지만) 혈육들은 마음에 있다 해도 단 한 번도 해주지 않는 "당신은 소중한 사람"이라는 말 등등... (그래서 어떤 정신과 환자는 선생님이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었다가 배신감에 자살을 한 일도 있었다지)

 

끝내는 내가 낄낄 웃기까지 했는데 왜냐고 물으시길래 "아니 내가 뭐라고 내 생명 하나 가지고 생면부지의 남에게 이렇게 유세를 떨고 또 선생님은 살아달라고 빌고 또 빌고, 이 상황이 진짜로 웃기지 않아요?" 하니 "그렇게 웃어주시니 정말 고마워요" 하신다.

[우리 집 무릎 고양이]

시스템이건 교육이건 다 알고 나눈 대화지만 중요한 것은 이 대화 한 번이 내 등에 꽂힌 칼을 시원하게 쑥~ 뽑아 주었다는 것이다. 화요일에 다시 내 생사여부를 확인 하겠다시지만 나는 잘 살아 있을 것이다. 

 

긴 말 할 필요있나, 정말로 내 등에 꽂힌 칼을 등치기로 오히려 더 깊이 꽂아 넣고 싶은 순간에는 전화를 하시라는 것이다. "외로울 때 나를 불러주세요~" 하는 전문가들이 거의 언제든 대기하고 있을 만큼 우리는 좋은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 공항 입국장에 들어서기만 해도 공기 냄새가 달라지는 내 나라가 있다는 것이 참으로 고맙고 또 고마운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