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버라이어티한 추석, 당↑근↓과 함께

비누바구니 2021. 9. 21. 22:20

 

이 집으로 이사 온 게 벌써 5년이나 됐더라... 그 무렵에 집사 형편에 맞춰 최고로 저렴한 것 고르고 또 골라 1도 마음에 안 들지만 암튼 캣휠이라 이름 붙었으니 겨우 하나 사 드렸더니 2년 만엔가 철수가 딱 한 번 2018.10.31 - [고양이 형제 철수와 경철이] - 달라도 너무 다른 고양이 두 마리 이렇게 사용해 주시고는 내내

[캣휠 위에 앉으신 엘리자베스 고양느님]

집사가 어디 있는지 도저히 모르겠을 때 귀 안 들리는 우리 경철군이 딱 앉아 집사를 기다리는 대합실(석) 정도의 역할을 하다가 요즘 들어서는 그마저의 쓰임새마저 잃고 냥무시 당하는 신세가 됐다

한 이틀 인간의 더럽고 가벼운 마음에 기똥찬 경험을 한 터라 그랬는지 이제 정말 그럴 때(나이)가 와서 그랬는지 그래, 버릴 건 버리자는 생각이 들어 우선 옷장부터 뒤져 몇 년 동안 입지 않았던 옷들을 명품이건 아니건 커다란 두 봉지에 질질 끌고 나가 헌 옷 수거함이 미어터지도록 밀어 넣고 다시 돌아보니

 

이제 남은 건 가구들, 이것들을 치워야 그래도 좀 비운 것처럼 보이려나... 의자니 뭐니 등은 하도 오래 돼 연휴가 끝나면 딱지 붙여 내보낼 것이고 캣휠은? -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지체 없이 당근 마켓이 떠올랐다. 왜냐면 캣휠은 워낙 냥바냥이라 집사들이 가장 사주고 싶어 하면서도 살까 말까 가장 망설이는 물건 중 하나이기 때문에 허접하지만 나눔 같은 걸 하면 누구라도 손 들고 나타나지 않을까, 해서 일부러 앱을 깔고

사진도 이따구로 허접하게 찍어 올렸는데 예상 외로 올리자마자 당↑근↓이 마구 울리기 시작했다. 동네나눔이라 별 인기 없을 줄 알았두만 ㅎ~ 여러 분 중에 가장 먼저 문의를 하시기도 했고 나눔 온도도 가장 높고 게다가 자동차로는 5분도 걸리지 않을 만한 거리에 주소를 두신 분과 일사천리로 약속을 잡고 "내일 오후에 가져 가시라" 해놓고 성질 개 더러운 할망구, 저걸 들일 때도 혼자 개고생 했는데 내갈 때도 딱 그만치 개고생 해서 한 시간도 안 돼서 

이렇게 계단참에 내놓고 "새벽 이슬 맞으며 가져가셔도 돼요~" 했는데 아이고 차라리 새벽이슬 맞는 게 나을 뻔했다 싶도록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시각에 오셨던 모양이다. 뭔가 끌고 당기고 하는 소리가 나길래 오셨나 보다 했는데 작은 선물 있다고 잠시만 내려와 주시겠냐고 문자를 주셨다... --;; 아이고 부끄러바 못 뵙는다고 걍 가시라는 답을 쓰는 사이에

캣휠 내놨던 자리에 이런 걸 두고 가셨다. 폰사진으로 얼른 보기에는 마시는 차 세트를 가져오셨나 했는데 막상 가지고 들어와 보니 @@*

세상에나, 이렇게나 유명하고 고급진 손 씻는 비누세트가 뙇! 아이들이 잘 탈지 어떨지도 모를 캣휠 값 한 번 엄청나게 받아먹은 셈인 것이다, 고맙고 죄송해라... 드린 것보다 훨씬 더 큰 걸 받은 것 같아 뭔가 죄스러운 마음이 드는 느낌적인 느낌이다. 아마도 당근 같은 마켓에 가진 일방적인 내 선입견 때문인 것 같은데 사실 나는 모르는 사람들과 이것저것 사고팔고 뭐 다 장삿속이지 해서 그런 장터에는 별 관심이 없었는데 이렇게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분도 계시는구나, 아마도 어쩌면 그런 곳에 가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분들일지도 몰라, 하는 색다른 깨달음, 경험. - 이럴 줄 알았으면 오리지널 버버리 코트도 당근에다 나눌 걸, 삼풍 백화점 무너지기 전 해에 산 무스탕도 있었는디~ ㅋㅋ

그리고 후기로 남기신 이 예쁜 시키들 모습! 그래, 어느 넘 할 것 없이 하얀 넘이 먼저 올라갈 리는 절대로 없지~~ 그나마 먼저 올라가 앉은 녀석도 이게 뭐지 한참 낯설고 뭔가 쑥스럽고 그런 느낌이 역력한 표정이다. 하얀 녀석이 좀 타야 할 것 같은데 어쩐지 안 탈 것 같다는 예감은 또 뭣이랴...?

 

암튼 넘넘 고마워요, 지*우*님! 실패할 수도 있는 물건인데 힘들게 가져가시고 저런 귀한 선물까지 주시고!

올해 따라 시작이 유난히 버라이어티 했던 추석이 이 에피소드를 끝으로 저물어가고 있고 악몽보다 더 악몽 같았던 그 전의 이틀이 새까맣게 잊어질 정도로 마음이 따끈따끈해졌다. 그래서 더더욱 땡큐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