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물체를 거리에서 보았다

그제 아침, 경철에게 깨워져 밥 차려드리고 정신 든 후 바로 한 일이 인터넷우체국에서 택배를 예약하는 일이었다. 나는 하도 악필이라 어디가서 뭘 쓰는 일이 늘 두렵기 때문에 이렇게 미리 신청해놓고 가면 송장이 저절로 출력 돼 나와 악필을 보이지 않을 수 있어 가끔 가는 우체국이라도 반드시 사전 예약을 하는 편이다. 며칠 전 "공대 누나 운운" 잘난 척하며([사람] - 공대 누나가 될 걸 그랬어, 1화 -[사람] - 공대 누나가 될 걸 그랬어, 2화) 되살려낸 노트북을 부치러 가는 참이다

우체국 택배 예약 완료

챙길 것 다 챙기고 현관을 나서다 아아~ 아그들 창문 열어주고 가야지, 며 손에 들고 있던 전화기를 신발장 위에 놓고 다시 들어가 틀림없이 창가로 나올 두 녀석 중 하나를 밖에서 찍어보려고 카메라를 챙겨 들었다

거리에서 올려다 본 창가의 내 고양이

보이나 철수? 밖에서 아무리 손을 흔들고 팔짝팔짝 뛰어도 반가운 표정은 1도 없다 - 아무튼 이것이 사단을 낸 것인데, 우체국에 가서 보니 접수번호를 보여줘야 하는데 전화기는 없고 카메라만 있네그랴... 한참을 우체국 아가씨더러 이런저런 정보 알려주며 검색 해내라 해도 안 나온단다. 할 수 없지, (내가 언니 전화번호를 외우고 있기에 망정이지) 우체국 전화로 전화를 한다, 안 받는다. 형부에게 한다, 오래 걸려 받는데 뭔가 방해한 느낌이다. 젠장...

저 멀리 보이는 익숙한 동물의 모습, 길고양이

그렇게 어렵게 택배를 보내고 돌아나오는데 왜 하필 평소에 우체국 오갈 때 다니지 않던 길로 가고 싶었던 것일까, 저만치 앞에 어디선가 많이 보던 정말로 익숙한 물체가 눈에 띈다. 전화기 대신 카메라를 들고나온 것 또한 이유가 이것이었을까?

우연히 마주친 길고양이가 숨지를 않는다

달아날까 무서워 눈을 쉴 새 없이 깜빡이며 (눈을 깜빡이는 것은 고양이에게는 미소 또는 뽀뽀다) 한 컷씩 누르며 다가가는데

우연히 마주친 길고양이가 외면을 한다

캣맘이 있는 아이일까, 아픈 아이일까, 슬쩍 외면을 하면서도 달아나지는 않는 것이 영 느낌이 남다르다. 그런데 아이고오~ 이 캣맘아... 아이들 밥 줄 때 아니어도 길 나설 때는 언제나 캔 하나씩은 챙기기로 한 것이 벌써 몇 년짼데 오늘 또 빈 손이냐고오~?! 급한 마음에 주위를 둘러보니 저 멀리 구멍가게가 하나 있긴하다. 사람 먹는 참치캔이라도 살 수 있겠거니 생각하고

우연히 마주친 길고양이가 나를 쳐다본다

아이를 지나 돌아보며 "너 거기 딱 있어라, 어디 가지말고?!" 했더니 "왜애?" 하듯 쳐다본다

사람 먹는 참치캔이라도 먹어주는 길고양이

그나마 마일드라 덜 짜겠지, 라는 생각에 저것을 골라들고 '가버렸으면 어쩌지' 캔을 따지도 못하고 급히 걸음을 옮기는데 저 멀리 차 밑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미안타, 이런 걸 먹을 거라고 줘서 진짜로 미안타... 탐색도 한 번 하지않고 먹기 시작한다. 배가 고팠거나 이렇게 염분 있는 건 오랜만이라 확 끌렸던 것이리라.

가까이 다가가도 도망가지 않는 길고양이

짭짭 꿀꺽, 소리까지 내면서 먹느라 좀 더 가까이 정면 쪽으로 다가가도 신경을 안 쓴다

참치캔을 먹고 있는 길고양이

멀어지면서 돌아보니 여전히 맛나게 먹고 있다. 가방에, 어느 가방이든 제발 캔 하나씩 넣어놓구라, 이 할망구야! 스스로에게 욕이 절로 나왔다. 

돌아오는 길목에 있는 기묘한 집 한 채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저런 물체를 다시는 마주치지 않기를 빌고 또 빌은 덕분인지 더는 눈에 띄는 아이가 없었다. 그런데 우리집 오는 길에 있는 저 집은 사찰 표시(나치 상징 거꾸로 된 그것)가 돼 있는데 정말 사찰일까 아니면 점집일까, 오가는 내내 궁금증을 자아낸다.

북쪽 창으로 옮겨 앉아 내다보는 내 고양이

거리에서 올려다 보니 나갈 때는 동쪽 창에 있던 철수가 이번에는 북쪽 창가에 앉아있다. "철쭈야, 철쭈야" 암만 불러다 뚜웅~한 표정으로 내다볼 뿐이다. 강쥐처럼 팔짝팔짝 뛰지는 않더라도 반가운 기색이라도 좀 하지럴...

어느 날 갑자기 구청에서 찾아와

참치캔 뚜껑을 어디 버리지 못해 가방에서 꺼내 놓으니 길 위에 그 생명 때문에 새삼스레 가슴이 아려온다. 미안타, 다음부터는 아무리 힘 들어도 캔 하나씩은 꼭 넣어다닐게...


그런데 어느 날 cctv가 날 추적해 갑자기 구청에서 찾아와 "쓰레기 무단투기죄" (참치캔)로 벌금 매기는 건 아닐까? - 예전에 구청이라고 해서 찾아온 사람들이 있었는데 주소를 잘못 알고 온 것이긴 했지만 그 때 죄목이 "쓰레기 무단투기죄"였던 기억이 갑자기 나네그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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