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스텝 꼬여 버린 고양이 형제의 일상

경철 고양이의 귓병 때문에 병원에 드나들기 시작한 것이 만 3개월이다. 나는 8월 초였다고 기억하는데 어딘가에 내가 남긴 글의 섬네일을 보니

반려동물 귀청소 함부로 하지 마라

7월 25일에 처음으로 병원 갔었던 모양이다. 그러니 만 3개월 하고도 며칠이 더 지났으니 우리도 슬슬 그 모든 것에 길이 들어가고 있다고 여겼고 사실이 그렇기도 하다. 그러나 무엇인지 한 스텝 꼬여 버린 것 같은 일이 생겼으니 그 일은 말미에 밝혀진다.

얼굴을 그릇에 파묻고 맛있게 밥을 먹는 하얀 고양이

지난 번 경철의 목에 난 넥카라 자국을 보고 (2019/10/25 - [고양이 형제 철수와 경철이] - 내 고양이 넥카라, 욕창 생길 뻔...) 기절 할듯이 놀라 요즘은 내가 아이에게서 눈길을 안 뗄 수 있는 시간에는 풀어서 잠깐이지만 자유를 주고 있는데 나는 이 아이가 그루밍부터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밥그릇으로 먼저 달려가 평소에 즐겨 먹지도 않던 건사료를 뽀득뽀득 씹어가며 먹어대는 모습을 매 번 보인다.


먹는 자세도 달라졌다 - 늘 어정쩡한 자세로 서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먹던 아이가 아예 찰싹 달라붙어 그릇에 얼굴을 파묻듯이 먹고 있는데 이것은 매우 드물게 "정말 맛있다" 자세이다 - 불쌍한 것, 넥카라 때문에 먹는 일이 가장 힘들었던 모양이다

심각한 눈빛으로 제 동생을 노리는 호랑이 무늬 고양이

그리고 이 호랑이과 고양이 표정 좀 보시라! 동물 다큐멘터리를 자주 보시는 분이라면 저것이 먹이감을 노리는 포식자의 눈빛이라는 걸 금새 알아 차렸을 터. - 경철의 식사가 끝나기만을 기다리며 잠시도 한 눈을 팔지 않고 집중하고 있는 중이다

왜? 하는 듯 돌아보는 하얀 고양이

와중에도 뭔가 쎄에~한 느낌이 들었든가 "뭐지?" 하는 눈빛으로 돌아봤지만 일단 보이는 건 사진 찍고 있는 집사 밖에 없다

서 있는 자세로 밥을 먹는 하얀 고양이

그러자 안심하고는 바로 옆에 있는 습사료 그릇으로 자리를 옮긴다

깊은 생각에 잠긴 호랑이 무늬 고양이

"음... 아직 시간이 좀 더 걸리겠군" 하는 표정일까?

밥을 먹다가 돌아보는 하얀 고양이

"아니, 아니야. 뭔가 이상해..." 라고 생각했는지

밥을 먹고 입맛을 다시며 돌아서는 하얀 고양이

더 이상 먹기를 멈추고 돌아서는데

동생 고양이를 쫓는 형 고양이

돌격! 호랑이 고양이. 이 전에도 썼지만 이럴 때 철수가 까딱 경철이 덜 아물은 귀라도 때릴까 정말 가슴이 철렁하는데

물고 뜯고 싸우는 고양이 형제

언제나처럼 제 동생의 목덜미를 물고 늘어진다. 이럴 때면 하얀 털 얼룩 털이 마구 날리도록 한바탕 난리가 나지만 피를 보도록 지독하게 구는 건 아니어서 철수가 워낙 개구지고 에너지가 넘치기 때문에 심술이 잦은 편으로 에너지 방출 삼은 놀이 정도로 대충 끝이 나지만 이 날 만큼은 집사의 발이 끼어들어 조기종료. 여기까지가 다시 찾은 아주 정상적인 일상이다


그리고 다시 밥 먹을 시간이 돼 넥카라를 하고 침대 밑에 숨어 있는 경철에게는 그 아래에 밥을 차려드리고 철수는 늘 먹던 자리에 차려드리고 잠시 자리를 비웠다 돌아보니 철수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온 집 안의 제 아지트를 다 찾아도 없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설마... 하고 침대 밑을 들여다 보니

제 밥을 뺏긴 동생 고양이의 표정

무슨 이런 장면이 다 있노?! 철수가 경철의 밥을 뺏아 먹다니???!!!

동생 고양이의 밥을 뺏아 먹는 형 고양이

철수는 언제나 경철에게 밥을 빼앗기는 편이었지 단 한 번도 이런 행동을 한 적이 없는데... (이 아이들의 일상적인 밥 풍경은 아래 두 글에서 확인할 수 있다 - 사실은 더 많지만 다 찾지를 못한다)

[2018/10/01 - [고양이 형제 철수와 경철이] - 가필드와 오디 고양이 형제의 반전 - 내가 네 밥 좀 먹을게!]

형 고양이의 밥을 뺏아먹는 동생고양이

[2018/02/05 - [고양이 형제 철수와 경철이] - 이 고양이 형제의 이런 식탁 풍경]

침대 밑의 고양이 형제

그런데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힘이 더 세고 싸움에 더 능해도 늘 밥 만큼은 양보하는 아이라 신사 고양이라는 말까지 듣지 않았던가? - 집사, 하 기가 막히지만 아무 말 안했다. 저희들 사이에 뭔가 있으면 알아서들 해결하면 된다. 하지만 착잡한 심정으로 셔터만 눌러대고 있으니 역시 철수는 똑똑한 고양이임에는 틀림없는 것이 뭔가 잘못 됐다는 걸 느낀 듯 밥그릇에서 스스로 물러난다

침대 밑에서 밥을 먹는 하얀 고양이

철수가 나가고 밥그릇을 경철 고양이에게 밀어주니 다시 먹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정말로 밥그릇을 뺏겼던 것이다...

걱정스런 눈빛으로 집사를 올려다 보는 고양이

집사 심기가 많이 불편한 것을 알고 있는 듯한 눈빛이다

민망함에 그루밍을 하는 고양이

곧 불호령이 떨어질 것만 같았을까, 핥핥 하기도 어려운 등덜미를 기어이 목을 꺽어 가며 괜히 그루밍한다. 어떻게든 시선은 피해야겠고 고양이 나름 생각 해낸 묘책이 저것일 것이다.


이렇게 경철이 병을 앓는 사이 서서히 일상은 돌아왔건만 그 와중에 뭔가 크게 한 스텝이 꼬여버린 이 일은 어떻게 다시 풀어야 할까나... 아픈 아이, 평소에는 힘이 달려 못 이기다 밥 하나 만큼은 제가 최고라고 차지했었는데 이제 이도저도 아니고 늘 밀리고 뺏기는 신세가 되는 건 아닐지, 어리석은 집사에게 새로운 숙제가 하나 더 던져진 기분이다 - 글을 마치며 문득 드는 생각이 아마도 저희들 싸움에 요즘 집사가 끼어들기 때문에 철수가 스트레스를 받은 것이 아닐까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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