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철이 귓병과 씨름을 시작한 지가 벌써 4달째에 접어들고 있는데 이제서야 겨우 두 녀석에게 나란히 밥을 차려 줄 수 있게 됐다. 비록 경철의 넥카라 때문에 철수와는 다른 높이의 식탁이 됐지만.
그러나 식탁을 높였음에도 불구하고 넥카라가 여전히 입과 그릇 사이에 장애물이 되자 잠시 생각에 빠졌던 경철 고양이
방향을 바꿔 다른 자리에서 먹기를 시도한다. 사실은 저 넥카라가 어찌 잘못 조절하면 그릇 위로 살짝 올라가서 밥을 도저히 먹을 수 없게 만드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때는 방향을 틀어서 움직이면 이 틈에 넥카라가 저절로 그릇 아래로 내려가게 하는 기술을 터득한 것이다
그리고 철수도 이제 경철이 병원 들락거리면 이상한 냄새를 풍기고 이상한 행동을 하는 일에 완벽히 적응을 했는지 며칠 전부터 슬슬 예전에 하던 꼬장을 부리기 시작했다. 얼핏 두 고양이 형제 서로 코를 맞대고 다정해 보이지만 (고양이를 모르는 사람들은 100% 그렇게 생각한다) 일촉즉발의 상황임을 집사는 즉시 눈치 챈다
철수의 왼손이 냥펀치 한 대 세게 날리려 들어올려지는 찰나가 사진에 잡혔다. 동시에 집사는 "철수얏!"
원망스런 눈으로 집사를 돌아보는 철수.(평소 같으면 못 본 체 그냥 두지만 혹 저 냥펀치가 경철의 아픈 귀에라도 맞으면 대단히 곤란해질 상황이라 철수에게는 미안하지만 끼어들지 않을 수 없었다.) "저 집사가 갑자기 왜 저래?" 하는 것만 같다. 미안타, 너한테 일일이 설명 할 수도 없고...
그래도 한 편으로는 안도의 한숨이 나오는 것이 이제 이 모든 상황들이 루틴화 돼 철수도 더 이상 큰 스트레스는 받지않는다는 증거를 봤기 때문이다. 동시에 맞을 뻔한 놈은 뛰어가서 밥 먹는 척~ (고양이들이 밥을 먹을 때는 싸울 의사가 없다, 나 좀 내버려 둬라~ 하는 신호인데 이 말을 존중하지 않는 것은 인간 뿐, 고양이 세계에서는 100% 통해서 밥 먹는 놈은 절대로 건드리지 않는다. 그래서 길고양이들도 밥 먹는 아이에게 시비 걸지 않고 조용히 순서를 기다리는 것이다)
철수가 집사 눈치 보는 사이에 도망갔던 놈은 바구니로 돌아와 "메렁~"하고 있는데
철수란 놈, 밥 먹고 돌아서는 제 동생을 다시 공격할 마음이었든지 이미 사라지고 없는 아이를 노려 의자 위로 울라가서 문득 깨닫는다
"어, 없네?"
메렁 하던 놈은 형의 이글거리는 눈빛을 느꼈는가 갑자기 "흡!"하는 표정이 되더니
갑자기 무슨 생각을 했는지 제 형에게 제 발로 다가가 머리를 들이밀며 "자 때려, 떄려 봐 어디!" 하듯 흔들어댄다
"정 그러면 오늘 내가 기어이 한 방 먹여주지!"며 철수가 발톱을 갈고 있는 사이, 저 하얀 고양이 하는 짓 좀 보소, 또 밥을 먹는 척한다 - 이런 것을 두고 치고 빠지기라고 하나?
["그래, 이 녀석 너 그 밥만 다 먹고 보잣!" 복수의 칼날 아니, 발톱을 갈고 있는 철수 고양이]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던 스트레스 상황도 이렇게 세 동물이 동시에 서서히 적응을 해가고 있었구나, 라는 것을 이 장면에서 문득 깨닫는다. 그러고 보니 경철이 귀 소독하는 일도 한층 쉬워졌고 약 먹이는 일도 병원 가는 일도 한결 수월해진 것이, 고양이들 성향으로는 스트레스가 쌓여 또 다른 병이 생겨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지경인데 그래도 살기는 해야겠던가 적응을 하며 천천히 일상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는것이 새삼 고맙고 가슴 아프다. 끝내 적응 못하고 다른 병을 내는 고양이들도 많은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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