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께 병원에 갔을 때 나름 매일 소독한다고 했는데도 "소독을 하나도 안 해 줬다"고 선생님께 혼 났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래서 그 날 선생님이 하시는 걸 꼼꼼히 보면서 따라하리라 마음 먹고 눈에 하나하나 사진 찍듯이 새겼는데
소독한 두 개의 그릇에 역시 소독한 칫솔 하나와 마른 솜, 또 다른 그릇에는 소독약을 적당히 묻힌 솜을 여러 장 준비한다
집사가 이것을 준비하기 시작하면 그렇잖아도 침대 밑에 둥지를 틀고 있는 판에 더더욱 긴장해 깊이 들어가 버린다
계속 나오는 피와 고름이 저절로 나아 멈출 때까지 상처를 열어놓아야 하기 때문에 몹시 아파보이는 데다 매일 흐르는 피고름으로 매일 닦아 주어야만 한다. 그저께 선생님 제법 깨끗하게 빗질을 해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귀아래 털에는 피떡이 져있다
한 번 닦아낸 뒤의 모습인데 선생님처럼 진료대 위에 아이를 옆으로 눕히고 두 사람의 조력자와 함께 아이 귀를 정면으로 들여다 보면서 할 수 있었다면 좀 나을텐데
귀끝에 아직 무엇인가 들어있는 듯 살짝 부풀어 있어서 양쪽에서 눌러 빼낼 것은 아래로 내려 가게 한 다음 다시 한 번 할 수 있는 만큼 피딱지도 떼 내고 닦아준다. 아이 눈동자 크기를 보니 생각보다 많이 아프거나 긴장하지는 않은 것 같아 다행이다 - 고양이는 겁을 먹으면 눈 전체가 까만 눈동자로 완전히 덮인다
피떡이 진 귀밑 털에도 소독약을 묻혀 불린 다음 (엄니, 그만 좀 해 하듯 나를 올려다보는 불쌍한 내 새끼...)
준비한 칫솔로 살살 빗어주는데 워낙 떡이 져있어 선생님이 쓰던 것 같은 참빗처럼 촘촘한 눈꼽빗이라는 그것을 내일은 하나 사 와야겠다 생각한다
다행히 아이가 잘 참아주는 덕에 귓속을 다시 한 번 할 수 있는 만큼 닦아내고
"이제 더는 못 참는다"라는 끄으응~ 소리가 들리길래 그만 하기로 한다.
선생님처럼 깨끗 말끔하지는 않지만 처음보다는 깨끗해진 느낌이 들기는 한다. 더 이상 피고름이 나오지 않을 때 까지 절개 부위를 열어 놓아야 하는 걸로 보이는데 아이에게 언제까지 이 짓을 시킬지... 그리고 나도 이것이 너무 아플 것 같아서 선생님처럼은 도저히 못하겠는데... 그런데 이것도 하다보니 조금씩 실력이 늘고 마음도 단단해지는지 오늘은 이 사진 보다 좀 더 말끔하게 닦아줄 수 있었다. 내일은 선생님이 하실테니 한시름 놓는다
이럴 때는 철수도 100% 긴장모드다. 아이를 제압하고 깅낑대고 하는 것이 일상은 아니기 때문에, 설사 일상이라고 해도 기분 좋은 상황은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일체 간섭없이 한 쪽 구석에 붙박힌 듯 눈치보며 앉아 있다. 이 아이는 또 무슨 죄냐고... 이럴 때 대부분의 고양이들은 제압 당했던 고양이들을 공격하기 마련인데 이번 귓병 일은 뭔가 그럴 만한 분위기가 아니라는 것을 아는지 일체 공격이라고는 엄두도 내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제 쪽에서 더 겁을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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