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 글에서 첫 모습이 이것이 될 것이라고 썼던 만큼 지난 번에는 회복실에 누워있는 전신 샷이었고 오늘은 아직 마취에서 전혀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얼굴 모습이다
아이는 저러고 있는데 집사라는 인간은...
위에 사진이 병원으로 가기 위해 안정제 먹이기 직전의 모습이다. 늘 눈치는 빨라서 저한테 집사가 뭔가 할 것 같은 느낌이면 재빨리 침대 밑으로 숨어버리는데 이 날은 바구니에 앉아 있길래 바구니 채로 휙 끌어내서 안정제를 먹일 수 있었다 (이것에 대해서는 지난 글 중 "제 손으로 넥카라 바꿔끼는 고양이"에 좀 더 많은 설명이 있다) - 석션 후 상태가 더 나빠진 것이 눈에 보인다. 귓구멍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물이 차서 귀를 덮어버릴 정도가 됐다
약 40~50분이 지난 후 안정제 기운이 슬슬 돌기 시작할 즈음이다. 한 바탕 스크래칭을 하더니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캐리어를 바라보면서 깊은 생각에 잠긴 듯 보이는데 이 고양이는 과연 어떤 선택을 했을까?
역시 천재 고양이답게 탁월한 선택을 했다. 제 발로 들어가 자리를 아주 제대로 잡고 앉아 이리저리 냄새를 맡아보는 모습이 "나 이제 이거 타고 가는거지?" 하는 것 같다. 그러기를 10 분 이상, 이제는 출발해야 할 시간이다. 택시가 올라오지 않으면 걸어가야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엉덩이 밀어넣고 어쩌고 할 필요도 없었다. 그냥 큰언니와 둘이서 앞뒤 한 쪽씩 지퍼만 닫고 끝
요즘 들어 유난히 더 집사가 미안함을 느끼는 철수는(철수는 늘 좀 사람 같아서 집사에게서 고양이 대접을 잘 못 받는다) 이런 어수선함에 관여하지 않으려 한다. 진심 우울증 같은 모습을 보이는 때가 많다 - 경철이 아프고부터 부쩍 심해진 것 같고... 어쨌든 병원은 가야하니 바쁜 마음에 아이한테 인사 한 마디 안 건네고 나온 것이 뒤늦게 알아졌다
병원에서 찍은 사진은 위에 큰 언니의 핸드폰으로 찍은 것이 전부이고 이 모습이 집에 돌아 왔을 때의 첫 장면이다. 좀 안정이 되게 캐리어를 잠시 열지 말자고 마음먹었었지만 안에서 하도 푸덕거려 오히려 좁은 곳에서 여기저기 벽에 귀를 박아 댈까봐 열 수 밖에 없었다. 전신마취를 한 것이라 다른 때와는 전혀 다른 것이 이 번에는 고개조차 가누지 못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움직이려고 한다
보통은 안 쪽에만 꿰매는데 경철이는 매우 상태가 심한 경우여서 밖에도 약간의 절개와 함께 꿰맸다고 설명하신다
안 쪽은 길게 가운데를 자르고 상처는 그대로 두고 양쪽만 봉합을 한 상태로 저렇게 상처를 한 동안 열어놔야 피와 고름 등이 빠진다고 설명하셨다. 그리고 그 날이 금요일었는데 월요일에 다시 상태를 보자고 하시는데 집사, 또 우긴다 - 아이 안정제 너무 자주 먹이는 거 싫다, 좀 더 있다 오면 안 되나? 하고. 그럼 언니에게 귀 사진 찍어보내고 일단 약 처방만 받는 방향으로 해보자고 또 져주신다.
그러자 하고 집에 돌아 왔는데 내가 우겨 잘 된 일 하나도 없다는 것이 시간이 가면서 점점 더 깨달아지고 선생님이 보자고 할 때 보이는 것이 맞다, 지난 번에도 혼자 갔다가 이 사단이 나지 않았느냐... 그래서 내일(이 글이 공개 되는 월요일) 안정제 자주 먹고 나발이고 오라신대로 가기로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 이유는 내일 이야기로 이어질 것 같다
이 자세는 군인들이 하는 훈련 중에 뭔가 정확한 이름이 있지 싶은데 낮은 포복? 몸전체를 땅에 꼭 붙이고 팔꿈치조차 세우지 않고 앞으로 기어가는 딱 그 자세인데
머리를 가누지 못하니 자꾸만 이쪽저쪽 쳐박으려 해 집사가 머리 받치고 따라다니다 도저히 기운이 달려 아이를 안아 들었다. 사진에는 안 찍혔지만 집사의 한 손은 아이 엉덩이를 받친 상태다. 혹시 누군가가 고양이를 저렇게 함부로 안아도 되나 오해를 할까봐 노파심에 설명한다
고양이를 안을 때는 반드시 네 발이 어딘가를 디뎌서 안정감을 느끼도록 해야만 한다(사람처럼 뒤집어서 얼굴 마주 보며 안으면 절대로 안 된다) 목을 가누는 아이라면 집사의 오른손은 배를 가로질러 받쳐야 하지만 지금은 목을 받쳐야 하는 상황이라 저 꼴로 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안겨서는 자꾸만 두 팔을 허우적대며 어디론가 가려고 한다 - 시선을 보면 분명한 목표가 있다
쥐 죽은 듯 조용히, 겁 먹은 눈으로 주위를 철수가 맴돌던 다가와 경철에게 말을 붙인다
"동생아, 마이 아파?"
"내 꼴 봐라, 안 아프겠나..."
앞으로 헤치고 나가려는 힘이 어찌나 센지 집사 팔은 점점 더 조여진다. 그렇게 안고 시간을 보내다 어느 정도 고개가 가누어져 살림하는 사람인 큰 언니는 살림하러 보내야만 했고 (여기까지 집사가 등장한 장면은 모두 카메라라고는 평생 처음 손에 들어본 언니가 찍은 것인데 버릴 것이 거의 없을 정도로 잘 찍었음에 고마움을 표시한다)
바닥에 내려놓고 집사 혼자 있으면서 잡은 첫 장면인데 다음 장면은 내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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