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 보는 고양이

당시 내가 올린 글 중 가장 길고 사진이 많고 또한 생생한 리포팅이었지 싶다.

그런데  댓글에 이런 것이 달렸었다. 별 뜻이 없는 것일 수도 있지만 참 마음이 묘했다.

나는 귀신 보는 고양이와 산다 - 기분 나빴던 댓글

아이들 이야기 재미있게 전달하려 인간의 마음과 말로 꾸미는 일이야 다반사지만 등에 식은땀이 흐르도록 긴장하고 염려스러웠던 경험인데, 이러저러 해서 열흘이나 지나도록 이에 관해 언급을 하지 않았다고 말미에 비교적 자세히 설명까지 했건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가벼운 마음이라...


이렇게 머시기한 글에는 거시기 하지 않아주면 좋으련만, 이 댓글이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고 후로 포스팅을 할 때마다 이 분이 또 뭐라 하실까 늘 마음 한 구석이 편치 않았다, 오늘도 이렇게 "덧"을 달 만큼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다. 난 유리멘탈이다!


별 일 아니기도 하지만 겪으면서 나는 찢어지게 마음이 아팠던 지난 2012년 5월 16일 저녁의 기록이다. 

나는 귀신 보는 고양이와 산다 - 어둠컴컴한 골목

2012년 5월 16일, P.M 7:55 평범한 저녁 서민 주택가의 골목 풍경이다. 이 사진을 왜 찍었냐고? 경철이가 창가에 앉아 졸다 구경하다를 반복하며 편안히 있다가 갑자기 후다닥! 익히 알려진 쑈를 시작하는 듯 했기 때문에 틀림없이 커다랗고 위협적인 길아기라도 와있어 그러려니 하고 일단 찍고 봤다, 누가 찍혔는지는 나중에 모니터로 보면 되려니... 그리고 경철이가 다시 말달리기를 해서 뛰어올 줄 알고 기다렸다. 안 온다...

나는 귀신 보는 고양이와 산다 -겁에 질린 고양이

P.M 8:02 -1 사진 찍은 시간을 보면 무려 7분이 지난 후에 침대 밑에서 모습을 드러내셨는데, 그것도 자발적으로 나오신 게 아니라 오만 짓 다해 꼬드기다 결국 철수가 들어가 끌어내다시피 해 (윗사진 컴컴한 부분이 철수) 겨우 .

무서워 침대 밑에 숨은 고양이

P.M 8:02 - 2 고개만 겨우 빼서 두리번거린다. 저러고 있으니 내 마음이 어땠을까...?

슬그머니 침대 밑에서 나오는 고양이

P.M 8:02 - 3 또 창밖에서 낯선 고양이나 남자들을 봤겠거니... 그건 아니다. 경철이가 그런 상대들을 보면 언제나 사냥모드로 들어갔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고 어떤 상대를 봐도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나는 귀신 보는 고양이와 산다

심지어는 전혀 다른 방인 침대방 밖으로조차 나오려 하지 않는 거였다.

두려움에 엉덩이가 엉덩이를 낮추고 선 고양이

P.M 8:03 - 1 엉덩이 톡톡 밀어가며 경우 방 밖으로 나오게 하는데 성공 했지만 낮게 굽힌 뒷다리와 한껏 낮춰진 허리, 그리고 뛰어나온 방 방향으로 흘끔거리는 시선 등이 뭔가에 대단히 겁을 먹은 거였다.

나는 귀신 보는 고양이와 산다 - 자세를 낮추고 꼬리를 부풀린 고양이

P.M 8:03 - 2 이렇게 침대 방 쪽을 돌아보고는 후다닥 다시 숨었다. (꼬리도 부풀어 있다)

두려움을 이기고 다시 나와보는 고양이

PM 8:04 침대 밑에서 저 쪽으로 돌아나오는 중 침대방을 벗어나 다시 컴퓨터 방을 바라보는, 여전히 같은 자세

역시 뒷다리를 굽혀 자세를 낮춘 겁 먹은 고양이

P.M 8:05 - 2

나는 귀신 보는 고양이와 산다 -오래 두려움에 시달리는 고양이

P.M 8:05 - 3 아무리 말을 걸고 쓰다듬고 해도 소용이 없다, 인간 손길을 피해가며 시선 고정! 시종일관 자세만 저러지 않았어도 마음이 덜 아팠을 것 같은데...

정말 무서워하는 고양이의 자세

P.M 8:05 - 4 나 겁 먹었어 !온 몸으로 보여주고 계신다.

겁 먹었다는 것을 온 몸으로 보여주는 고양이 자세

P.M 8:05 - 5 이럴 때는 강쥐와 달라서 보호자의 손길조차도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이 얼마나 안타까운지 말로는 다 할 수가 없다.

두려움에 찬 자세로 숨을까 말까 망설이는 고양이

P.M 8:06 그래도 지 엉아가 그 방문턱에 언제나처럼 걸치고 앉았으니 주춤거리며 다가가보기는 한다.
귀신 보는 고양이

나는 귀신 보는 고양이와 산다 - 다시 나와 보는 겁에 질린 고양이

P.M 8:07 - 1 철수 경철씨, 물리적으로는 한 공간에 있으면서 정신적으로는 완전히 다른 공간에 있는 게 한 눈에 보인다.

동생 고양이는 두려움에 떨고 형 고양이는 태연자약 귀를 긁고 있다

P.M.8:07 - 2 그런데 철수,

일어나서 겁에 질린 동생 고양이에게 다가가는 형 고양이

P.M 8:08 - 1 전혀 무심했던 게 아니었던 모양인지 갑자기 벌떡 일어서더니

나는 귀신 보는 고양이와 산다 - 동생을 나무라는 형 고양이

P.M 8:08 - 2 "시캬, 도대체 갑자기 왜 그래? 정신 차려!!!???" 마치 사람 형이 넋 나간 동생에게 사랑의 주먹을 날리는 것처럼.

형 고양이를 피해 침대 아래로 숨는 하얀 고양이

P.M 8:08 - 3  경철군 반항 한 번 못하고 다시 침대 밑으로. 아이들이 싸울 때는 절대 개입하지 않는 게 내 원칙이지만 이 날만은 철수군을 끌어낼 수 밖에 없었다.

나는 귀신 보는 고양이와 산다1

P.M 8:14 - 1 다시 5분 이상 실랑이 끝에 나왔지만 여전히... 이쯤 되니 너무 오래 끌면 원인은 모르지만 트라우마로 굳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반드시 무슨 조치를 취해 싹을 잘라야만 한다, 마음 먹었다.

겁에 질려 정신 없는 하얀 고양이

P.M 8:14 - 2 매일 밤 11시 15분 경이나 돼야 먹는 가다랑어를 이 시간에 가지고 왔다, 맛있어 죽겠는 것이 입에 들어가면 잊어버릴 것 같아서. 그러나... 입에 받아넣기는 하지만 눈은 아직 넋이 나가 있다.

해결되지 않는 두려움에 쌓인 하얀 고양이

P.M 8:15 - 1 인간 손에 빵구가 나도록 야무지게 받아먹던 녀석인데 반은 흘렸다, 그리고 여전히,

나는 귀신 보는 고양이와 산다 - 여전히 두려워 하는 고양이

P.M 8:15 - 2 건성으로 받아먹고,

두려움에 눈동자가 커진 고양이

P.M 8:15 - 3 시선은 그 곳으로.

간식을 받아 먹는 하얀 고양이

P.M 8:16 - 1 먹고

아직도 겁에 질린 표정의 하얀 고양이

P.M 8:16 - 2 살피다가...

바람같이 날아가는 하얀 고양이

P.M 8:16 - 3 이 사진은 또 뭐? 경철이 날았다, 침대 밑으로 다시, 가다랑어를 다 먹기도 전에.

꼬리를 잔뜩 부풀려 흥분을 표시하는 고양이

P.M 8:20 그리고 3, 4분 후 같은 과정을 거쳐 다행히도 이 번에는 창가로까지 진출! 하지만 이 모든 과정 다시 반복! 밖은 아무리 주의깊게 살펴봐도 어떤 흔적도 없고... 지만 저 엄청나게 부풀어 오른 꼬리가 여전히 엄청난 흥분 상태라는 걸 보여주고 있다.

아직도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한 고양이

P.M 8:32 7시 55분에 시작해 8시 32분이 될 때까지 저 자세와 저 표정.

어리둥절한 표정의 형 고양이

P.M 8:39 드디어 엉아와 나란히 평소처럼 창가에 앉았지만 아직 사라지지 않은 두려움과 경계심. 철수의 의아해 하는 눈빛.

이제 두려움을 극복한 기특한 고양이

P.M 8:40 당시에는 시간이 그리 많이 지났다는 걸 몰랐는데 포스팅 하겠다고 정리하며 보니 저 작은 것이 무려 45분이나 두려움에 떨며 혼자 극복하느라 애 먹었다는 걸 알고나니 새삼 가슴이 얼마나 따가운지...
*
이 아이들이 4개월 가량 됐을 때 경철이 이 비슷한 행동을 했던 적이 있긴 했었다. 그 때는 낮잠 자다 벌떡 일어나 마구 내달려 숨는 행동을 하루에도 몇 번씩 하더니 결국은 이틀째 되던 저녁부터 토하고 설사를 시작해서 3일간 잘 먹지도 않고 잠만 자는데(이 일에 관해 며칠 전 잠깐 언급이 돼 기억의 고리가 다시 이어지는 듯한 기분이다. 구충제 때문이었거나 질 나쁜 캔 때문이었거나 몹시 상태가 안 좋았었다. 그 때 아프기 사작한다는 신호를 이런 식으로 보냈었구나, 새삼스럽다) 아이 놓치는 줄 알았었다. 다행히 다음 날 아침 시간에 병원 예약한 그 날 저녁부터 먹고 마시기 시작해 금새 낫기는 했지만 그 기억이 나서 위의 일을 겪는 동안 얘가 또 아프려나 마음 졸이며 며칠간 지켜보느라 이런 일이 있었다는 얘기를 얼른, 재미있게 보고 할 수가 없었다.
가다랑어가 역할을 한 건지 철수의 주먹질이 정신을 차리게 해 준 건지 다행히 아무 후유증 없이 지나간 듯하다. (우리 철수군, 참으로 든든하다. 어쩌면 고양이의 탈을 쓴 사람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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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서야 말이지만 증명샷도 그렇고 평소 아이 성격도 그렇고 모든 정황이 그 날 우리 경철군은 귀신을 본 게 틀림 없닷!!!

 

2017년 8월 22일

아이 기르는 것과 똑 같은 마음이지 싶다. 옮기면서 하나하나 다시 보니 그 때 그 감정들이 고스란히 되살아난다. 참 마음이 아팠었고 저 위에 댓글 때문에 기분이 언짢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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