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꽃뱀 고양이

다쳐서 아픈 길고양이를 한참이나 못 보던 때였던 듯하다. 지금도 가슴에 사무치는 그 찌그맣고 못생긴 길고양이 순덕이... 이제 그만 잊고 내가 그 아이를 버린 게 아니라 셋집 사는 떠돌이 신세라 어쩔 수 없었다고 우기고 싶은데 지난 새벽, 소리소리 지르며 밥자리 다툼하는 암고양이들 소리에 잠을 깨 밥 들고 뛰어나가 '싸우지 마라, 여기 밥 있다'고 달래고 싶은 마음과 끝까지 책임 못 질 신세면 나서지 마라, 하는 갈등과 함께 새삼 찍소리 한 번 못내던 순덕이와 그 동네에서 내 밥을 기다리던 다른 아이들 생각이 나 다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얼마 전 지영이의 장면을 목격한 이 후로 새로이 순덕이에 대한 희망을 갖고 밥 줄 때마다 일부러 주머니 있는 바지로 갈아입고 카메라를 갖고 시간대를 바꿔가며 나가지만,

대장 길고양이

언제나 단 하루의 예외도 없이 순덕이가 아닌 담북이 녀석이 제일 먼저 나를 맞는다. 이 녀석이 먼저 와 있으면 순덕이는 절대로 접근 할 엄두를 못낼 것이다. 임신한 예쁜이 밥을 뺏아 먹는 매너 없는 놈인데 하물며 장애 고양이에게 밥을 허락할 놈이 아니다.

 나중에 온 임신 고양이에게 밥을 뺏긴 대장 길고양이

밥을 부어준 후 주변 정리를 마치고 돌아서니 무엇이 휘리릭 움직이는 느낌이더니 어느 새 그림이 이렇게 바껴 있다. 배가 많이 고팠던 듯 살짝 당황하여 여자 아이 주변을 기웃기웃 하시던 담북군 

임신한 고양이가 먼저 먹도록 기다리는 대장 길고양이

이내 뭔가 당황한 마징가귀를 하고 할 수 없다는 듯 주저앉아 여자아이가 식사를 마치도록 기다릴 모양새다. 뭐야 이 그림은!!!??? 저누무 지지배 임신냥인가? 그럴싸 해서 그리 보이나, 배도 그런 것 같고... 


위 사진에서 기억 난 팁 하나 

길아이들 밥에 개미가 많이 꼬여 고민 중이신 분은 문방구에서 판화고무를 두어개 사다가 그릇 밑에 깔아 주세요,  개미 99% 접근 못합니다 간혹 흘려놓은 밥에 얼쩡거리는 개미가 있긴 하지만

밥 먹다 휙 돌아보는 임신 길고양이

그런데 담북아, 너 예쁜이 임신했을 때는 캔 나오는 족족 다 뺏아 먹지 않았니? 10개월여 너를 아는 동안 네가 이리 매너 있게 행동하는 걸 나는 본 적이 없다만... 그렇다 해도 오래 돌봐온 아이가 새로 나타난 아이에게 밀린다는 건 기분이 영 그렇다, 더구나 저 아이 우리 지영이까지 물어뜯어 쌈박질 났던 그날 대문간에 지영이 털이 뭉치로 굴러다니게 한 바로 그 지지배라...

암수고양이 머리를 맞대고 맛있게 밥을 먹는다

만일 임신힌 아이라면 두들겨 쫓을 수도 없고 저리 앉아 기다리는 담북이가 짠하여 특별히 좋은 캔을 가져와 담북이만 따로 불러 먹일 생각으로 이 쪽에 따로 부어줬으나 저 떡을 할 누무 시키, 그냥 내 앞에 앉아 먹었으면 조 냔이 오는 걸 내가 막았을 텐데  괭이 아니랄까봐 큰 덩이로 물고 저 쪽으로 달아나니 (큰 덩이를 사냥하면 한갓진 곳으로 가 돌아앉아 먹는 장면은 집고양이에게서도 자주 목격된다)

돌아서서  밥 잘 먹던 조 냔이 더 맛있는 냄새를 맡고는 금새 따라붙어 저런 장면을 연출하신다. 약하고 아픈 몸으로 밀려 안 보이는 순덕이 때문에 인간 마음이야 어쨌든 암수 서로 정답구나.

임신한 고양이가 먹으면 숫고양이는 접근을 삼간다

담북이 사냥해 간 것을 다 뺏아 먹은 삼색 지지배, 이제 직접 사냥에 나서는데 보고 있는 인간은 요 냔의 당돌함이 참말이지 싫으다, 지난 번에 지영이 때도 딱 이렇게 당돌한 모습을 보여 정 안 가게 하더니! 

대장 길고양이 밥을 강탈하는 임신한 길고양이

담북이 침 질질~ 어리숙한 저 표정 때문에 더더욱 내 심기가 불편하다.

겨우 남은 한 덩이를 물고 저 쪽으로 가는 어리숙한 대장 길고양이

손바닥 만치나 작은 지지배라 다행히 다 물고 가지는 못하고 돌아서니 담북군 얼른 와서 한 입 가득 물고 달아난다. 

요망스런 얼굴을 한 임신 길고양이

그리고 남은 건 당연히 요 지지배 차지다. 예이, 요망한 냔!


천하에 매너 없던 담북군을 호령해 복종 시키다니 너는 꽃뱀임에 틀림이 없어!!! 착한 지봉이가 그렇게 애지중지 너를 거두더니 동네 말아먹을 꽃뱀을 키웠어~ 이래서 또 한 동안 카메라 없이 나가야 할 모양이다. 인간의 잣대와 상식으로 이 아이들의 섭리를 간섭하려 하니  죄 없는 미물을 미워하게까지 되는 것이라 내 느들 안 보고 말란다, 내놓는 밥 잘 없어지면 서로 잘 나눠 먹고 잘 지내는 것이려니 그리 믿을란다

그리운 길고양이 순덕이

순덕아, 우리는 모두 이렇게 잘 지내는데 너는 어디 있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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