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기를 좋아하는 난청 고양이
경철군, 아침마다 청소기만 꺼내면 불문곡직 달려와 간절한 눈빛 발사, 청소기를 보고도 도망가지 않고 오히려 간절한 눈빛을 발사하다니, 어쩌라고?
이걸 해달라는 거다. (마침 큰온냐가 텃밭에 가자고 와 있어 찍을 수 있었다, 사람 손의 고마움~) 커텐 또는 가구 청소용 솔 끼워서 저를 청소해 달라고. 엉덩이가 저절로 치켜질 만큼 좋아한다, 뿐이랴
엎드려 기면서 바람 나오는 청소기 똥꼬에 코 쳐박고
발라당까지, 아주 좋아 죽음. 이 아이는 난청이니 안 들려 그런가보다, 그러기를 6년. 이제는 청소기 꺼내기도 겁이난다, 들러붙어 제 요구가 채워질 때까지 떨어지질 않으니 요즘 같이 짜증스러운 날씨에는 더더욱.
그럼 철수는 설마 난청이 아니니 여늬 고양이들처럼 청소기 싫어할 것이야, 싫어한다 물론, 그러니 청소기 돌리는데 적어도 방해는 안 될 것이야...?
그러나! 두 녀석들 때매 침대 위에도 반드시 청소기를 돌려야 하는데 절대 비켜주질 않는다. 비켜라~ 하다 못해 두 다리 잡아올리고 청소기를 들이밀면 "아, 왜애~" 한다. 그러니 철수군은, 청소기가 싫긴 하지만 - 제 몸에 솔질 같은 거 하지 말라고 한다, 평소에 - 무서워 하지는 않는다, 모다 경철군 덕분이다. 이러다 보니 예전 이야기가 생각난다, 그래서 소환. 2013년 7월 10일이었다.
★ ★ ★
우리집 변태 개그묘 경철씨, 익히 알려진 대로 청소기를 아~주 사랑해 주십니다.
씹고!
뜯고!
맛 보고!
즐기고! 경철이가 이 짓을 할 수 있는 이유는 간단해요, 난청이라 소음이 두렵지 않거든요. (가끔 특정 주파수의 소음은 들리나 싶기도 해요)
광고를 그대로 따라만 하면 창의력 꽝!인 고양이니까 한 가지만 더~ 올라타고!
하지만 철수씨는... 도무지 청소기를 사랑할 수 있을만치 무덤덤한 청력의 소유묘가 아니라는 얘기지요. 그러나 경철이는 남들이 들을 수 있다는 걸 모르고 철수는 경철이 안 들린다는 걸 모르니, 돌콩만한 경철씨가 아무렇지도 않게 들러붙어 개구신 짓을 할 때는 반드시 뭔가 좋은 것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그 소음에 도망 다니면 자신이 오히려 뭔가 상식에 어긋나나,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나봐요. 그러니 흡입구가 웬만큼 가까이 가도 모두지 비킬 생각을 안 해요. "비켜, 안 비켜?" 그러면 인간도 방법이 있지요.
이에는 이, 눈에는 눈! 허걱! 설마 몸에다가 진짜로 붙인겨??? 정말 그렇게 견딜 작정인가, 사람이 슬금슬금 흡입구를 가까이, 점점 더 가까이 가져가 봐요. "참아야 하느니라, 이거 머 좋은 건가본데 나만 싫다 하면 바보 되자녀..." 하듯 견디고 계셔요, 절대 도망 안 가요, 틀림없이 겁은 내고 있는데...
아띠, 고만 해!!! 당해 보니 별 것 아니기는 하네...
그러던 어느 아침!
"내 장난감, 낑겼어, 낑겼어, 내 놔아~" 청소기가 윙윙 최고의 수위로 돌아가고 있는데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도망가지는 않아도 늘 어느 정도는 불편해 하는 기색이더니 이 날부터는 완전 극뽁!의 포스가~~^^ 참 신기하다, 아무리 동생이 멋모르고 설쳐도 싫은 건 싫을 것 같은데 정말이지 "극복하고 말테닷!"하는 느낌을 내내 주더니... 이런 녀석이 기특하기도 하지만 이 놈 저 놈 모두 마음이 아파요,
들리지 않는 경철이는 말 할 것도 없지만 애꿎은 철수는, 다른 고양이들 같으면 극뽁! 이런 거 할 필요도 없는데 순전히 저 돌콩, 개구신한테 얕잡힐까봐 견뎌내는 것 같아서요. '철수야, 고양이들은 원래 청소기 무서워하는 거야. 도망가고 싫어하고 그래도 괜찮아...' 경철이는 들리지 않는 아이라 특별하다는 설명을 해 줄 수도 없고...
그나저나 요 며칠 전부터는 인간은 아예 기계를 번쩍 한 팔로 들고 청소하게 됐어요. 저 개구신이 청소기 똥꼬에서 나오는 먼지바람을 저렇게 자꾸만 핥핥하고 들이마셔서, 그렇잖아도 가끔 심상찮은 기침을 하는 시키인데... 대신 할망구 손목이 시리기 시작했습니다이~--;;
다시 오늘, 2017년 8월로 돌아와서, 이 후로 철수, 웬만한 소음에는 눈도 깜빡 않는 담대한 고양이가 되었지만 난청 고양이, 심심하거나 불만스러운 것이 있을 때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이 방 저방 뛰어다니는 것도 함께 배워 두 시키 함께 소리소리 지르며 불만을 토로할 때면 아, 차라리 내가 난청이고 싶어라~~
달랑 두 개 달렸던 댓글, 지금도 이렇게 달랑 두 분~^__________^
컴터맨 2013.07.10 15:25 신고 URL EDIT REPLY
아...철수의 저 얼음땡 표정! 가여워서 어떡.........ㅎㅎㅎㅎ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얘들이 청소기 소음을 귀로만 듣는건 아닐꺼예요. 초등학교때 들은바로는 골전도라고 해서 뼈를 통한 진동으로도 감지한다던데, 사람애기(...라고 하니 웃기네요 ㅋㅋ)들이 청소기 돌리면 잘 자는 이유가, 그 진동이 엄마 뱃속에 있을 때 느끼던 것과 거의 일치한다는 과학적인(!) 얘기가 있더라구요 ㅎㅎ 아마 경철이 귀가 잘 안들려도 골전도를 통해서 청소기를 느끼고 있을 꺼란 생각이 듭니다. 철수 역시 얼음이 되었지만 확 튀어 도망가지 않는것도 뭔가 매력적인 부분이 있기때문에 그런게 아닐까 싶어요 ㅎㅎ
고양이두마리 | 2013.07.10 15:39 URL EDIT
골전도라는 말씀 맞는 것 같아요. 돌아서 가는 경철이 바닥을 통통 치면 돌아보거든요. 그 만큼 진동에 민감하니 그 진동을 틀림없이 느낄 거예요. 그런데 철수는 암만봐도 제 해석이 맞는 것 같은 것이 아직도 좋아하지는 않아요, 피해 다닐 필요가 없다는 건 느끼는 것 같지만, 울 철수는 상남자에 총명괭이 라!!! ㅎㅎ 경철아~ 해서 뽀르르 달려오고 반짝 돌아보고 이러지 못한다는 사실이 요즘 들어 새삼 심하게 딱해요 ㅜ.ㅜ
(아래는 아주 생각할 거리가 많은 댓글)
오온이 2013.07.10 17:01 신고 URL EDIT REPLY
이 글에 터키쉬 앙고라 태그가 달린 것은 더구나 다시 보니 난청도 있음은 흰 털에 파란 눈 괭이 덜컥 비싼 돈 주고 분양 받기 전에 난청이란 문제도 있으니 보시오, 하는 뜻입니까옹? ^^
고양이두마리 | 2013.07.10 17:35 URL EDIT
넹, 그렇사옵니다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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