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는 오늘도 달린다

그저께인가, 아주 가깝게 지내는 이웃께서 "손도 아프담서 왜 일케 달리셔요~?"라고 쉬지 않고 지끈 일에 매달리는 집사를 걱정 해주셨다. 맞다, 내가 왜 일케 달리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봤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내 고양이 형제]

한 번도 새겨 본 적은 없지만 답은 의외로 금새 나왔다. 내 고양이 형제의 건강을 비는 마음이다 - 옛 할머니들이 장독대에 정화수 떠놓고 천지신명께 빌던 것처럼 샤머니즘적인 기복(祈福) 행위라고 할 수 있다고 스스로의 행위가 해석 되어졌다.

제 손톱을 물어뜯는 경철 고양이

이 형제를 좀 아시는 분들은 모두 아시다시피 나이도 이제 10살이니 만큼 만만찮은데다 각각 탈모와 귓병이라는 지병에 몇 년째 시달리고 있어 아이들 행동양상이 손가락 만큼만 변해도 집사 가슴이 철렁! 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런 날이 더해갈수록 불안의 무게도 커지고 있어 그 불안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뭔가 정신을 쏟을 일이 첫째로 필요 했고

이렇게 만들어진 것들을 가심비 높은 이웃들과 나누면 그들의 기쁨이 내 아이들의 건강을 위한 축복이 되리라는 그런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약 먹임을 당하고 분함을 달래려 의자 위로 뛰어오른 경철 고양이]

경철의 귓병이 재발 조짐을 보여 약을 타오고 구토를 하고 등등의 이야기를 얼마 전에 했었는데 이삼 일 전부터 다시 수상한 조짐을 보여 두고보자, 보자 하다가 토요일, 드디어 이건 안 되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주말이다... 어쩔 수 없이 지난 번 구토를 하던 그 약을 꺼내 충분히 밥을 먹고 어지간히 소화도 됐을 만한 시각을 택해 약을 먹였다. 

[엄니, 도대체 나를 왜 이렇게 괴롭히는 거에여? 하듯 바라보는 경철 고양이]

만일의 구토를 대비해 방바닥에 있던 스크래처며 바구니 등을 모두 치우고 아이 상태를 지켜봤다.

[눈을 감고 분을 삭이는 경철 고양이]

또 당했다고 생각 했는지 의자 위에 올라가 오랫동안 분해분해 죽겠어 하는 티가 역력했지만 다행히 구토는 하지 않았다. 소화제라고 하얀 시럽 같은 걸 같이 받았는데 그걸 빼고 먹인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됐을까 싶기도 하고 캡슐에 섞지 않고 한 포 남겨 두었던 가루 소화제를 좀 더 보태서 먹인 것이 도움이 됐나 싶기도 하다.

[경철 고양이는 며칠 잊고 지냈던 약을 갑자기 먹은 탓인지 오래오래 화를 내며 앉아있었다]
[이제는 내려오고 싶은데 아직도 불안하다]
[내 차라리 안 내려가고 만다! 엄니라고 꼴도 보기 싫다!]

다행히 저녁에도 여분의 소화제를 좀 더 섞어 먹였더니 구토는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일요일인 오늘 세 번째 약을 먹였는데 아직은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 스트레스 때문에 침대 아래 박스에 살림을 차린 채 얼굴을 잘 보여주지 않는 것은 마음이 편치 않지만...

[경철이 약 먹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란 철수 고양이]

한편, 창밖을 구경하며 여유작작이던 철수고양이, 경철이 약 먹임을 당하고 의자 위로 뛰어올라 안절부절 그루밍을 하며 수선을 떠는 꼴을 보더니

[상자 속에 들어가 집사의 눈을 피하는 철수 고양이]

이제 제 차례라고 생각했는지 휘릭 뛰어내려 컴컴한 복도의 상자 속에 제 나름 숨는다고 숨어버렸다.

["내 절대 엄니와는 눈 안 마주칠라오~"]

집사 눈만 피하면 약 먹는 일도 피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일까 ㅎㅎ~ 그런데 이 녀석은 아침 일찍 영양제와 유산균을 한 큐에 먹었기 때문에 오늘 하루 더 이상 약 먹을 일이 없는데 괜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집사를 피해 달아나는 철수 고양이]

아무리 시선을 피해도 집사는 계속 사진을 찍으며 비킬 생각을 하지 않으니 "차라리 내가 피하고 말지!"라고 결심한들 다시 휘릭 뛰어 바구니를 벗어난다, 귀연 넘~

 

그렇다. 집사가 쉬지않고 달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내 손, 내 어깨 아픈 건 아무것도 아니다. 내가 무엇인가를 해서 기뻐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 기쁨이 내 고양이 형제에게 축복으로 돌아온다면 그리고 그것이 건강함으로 이어진다면 집사는 오늘도 내일도 더 이상 어쩔 수 없을 때까지 쉬지 않고 달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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