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옷들을 정리해 침대 아래에 수납하려고 높이 넓이 딱 맞춘 골판지 상자를 몇 개 주문해서 생긴 에피소드들을 이틀 연속 소개 했었다.
하필 그 상자의 높이나 넓이가 고양이가 들어가 이렇게 턱 받치고 앉았기에 딱 알맞았던지 늘 열정에 넘치고 새 것에 낯가림이 적은 철수 고양이가 떡하니 들어가 제 동생과 놀기는 이미 포기 했지만 상자는 놓치고 싶지 않았던지 저렇게 앉아 졸다 깨다 멍때리기를 반복한다.
하지만 고양이가 아무리 좋아한다고 해서 이 좁은 방구석 한복판에 골판지 상자가 떡하니 버티고 있게 할 수는 없는 일. 게다가 집사도 나름 생각이 있어 박스를 넉넉하게 주문 했기 때문에 생각했던 일을 실천에 옮기기로 했다.
집사의 생각은 옷을 정리해넣고 맨 끝자리에 이렇게 고양이가 들어갈 만한 입구를 만들어 침대 아래에 넣어주는 것이었는데 대충이지만 만들어 넣어주자마자 아니나다를까 "땡큐 엄니!" 하듯 냉큼 들어간 철수 고양이,
그리고 마침내 약 먹을 시간이 됐는데도 나오지 않길래 다시 들여다보니 저도 집사가 왜 들여다보는지 눈치를 챘는지 외면! "철수야, 약 먹을 시간인데...?"
"철수 어없다아~" 푸히힛! 아마도 고양이들은 제 귀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는 것이 분명하지 싶다. 이렇게 뒤 귀가 쫑긋! 넘나넘나 귀여워 귀만 쫑긋한 장면을 열 장도 넘게 찍었다.
이렇게 고집을 부릴때는 그냥 내비두는 수 밖에 없다. 숨어있다가 지겨우면 몇 분 지나지 않아 99% 제 발로 걸어나온다. 나머지 1%는 가끔 제가 약 먹는 걸 피해 있었다는 걸 깜빡하고 그대로 잠이 들어버리는 경우이다.
이 날은 요행히 99% 중에 속하는 날이어서 붙잡혀 약을 삼킨 다음 잔뜩 골이 나 있길래 한 동안 못 만났던 캐닢쿠션을 내어줘도 뚜웅~ 한 표정이 풀리지 않고
"캣닢쿠션이고 나발이고~ 엄니가 하는 짓 다 싫다! "하듯 외면하는 것이 쉽게 마음이 풀리지 않는 모양이다.
그리고는 진짜로 캣닢쿠션에는 일별도 않고 돌아서서 스크래칭을 하다가 우연히 시선을 위로 올렸다 발견한 것이 있었으니,
한 발 더 내딛지는 못하겠고 바깥 세상은 궁금하고~ ET처럼 길다랗게 목을 빼고 창밖구경 삼매에 빠진 경철 고양이가 눈에 딱 띄인 것이다.
분풀이 제대로 할 만만한 상대를 발견한 이 에너자이저가 그 분을 가만히 속으로만 삭이고 있을리 절대 없다. "내 저 시키를 확 밀어버리기라도 해야겠다" 싶었던지 단숨에 휘릭 의자 위로 뛰어올라
캣타워를 지나 공격하기 좋은 위치인 제 동생보다 한 칸 위의 캣폴로 뛰어오르니(고양이는 위에서 공격하는 것을 늘 유리하게 생각한다) 경철 고양이는 바부겠는가, 제 형이 뛰어오름과 동시에 이미 캣타워를 통해 방바닥까지 한달음에 하강,
"엇, 캣닢쿠션님, 여기 계셔쎄요~?" 하듯 공손하게 인사를 시작한다. 하지만 그 인사가 채 끝나기도 전에
장면은 순식간에 이렇게 바뀌어버렸다. 우리집에서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일이라 경철 고양이도 이제는 제 형의 모든 행동에 담담해진듯 뒷쪽 바구니로 자리를 양보하고 아무 생각없이 앉아있고 우리의 금쪽 같은 하루는 또 이렇게 지나갔다.
아무튼 집사에게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제 귀 모양 따위는 새까맣게 모르고 완벽히 숨었다고 믿는 순진한 내 '귀 쫑긋 고양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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