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집사에게 훨씬 더 의지하는 고양이들

여태 몰랐던 사실을 하나 깨달은 일이 있었다. 때는 금요일 새벽 3시 몇 분 전 쯤이었다. 잠을 자다가 문득 꾸는 꿈이 마음에 안 들어(꿈을 꾸면서도 이것이 꿈이라는 걸 의식하는 일이 종종 있다는 것을 모두 경험 하겠지만) 일부러 잠에서 깨면서 짐작한 것이 5시 30분은 됐으리라는 것이었고 마침 고양이 형제도 함께 일어나길래 그 시각이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았다.

고양이 형제가 아침식사를 마치고 물 마시는 모습[고양이 형제가 아침식사를 마치고 물 마시는 모습을 찍은 시각이 새벽 3시 4분]

그리고는 곧장 두 녀석 모두 밥을 달라는 것인지 아침인사를 하라는 것인지 앵앵거리며 들러붙길래 그제서야 불을 켜고 부산히 아침밥을 차려서 대령하고 시계를 보니 새벽 3시! 우리집 시계는 몇 분 일찍 가도록 맞춰져 있으니 적어도 2시 50분 쯤에 일어난 모양이다. 

그런데 이 뭐지? 하고 느낀 것은 내가 일어나 곧장 불을 켠 것도 아니었고 자다가 종종 화장실에 가는 일이 있어도 고양이 형제는 평온하게 계속 잠을 자는 것이 지금까지의 루틴이었는데 어쩐 일인지 두 녀석 모두 집사가 잠에서 완전히 깼다는 걸 알아차린듯 같이 완전히 잠에서 깨버렸다는 것이다.

침대 위에서 생각에 잠긴 고양이

철수는 밥을 먹고 다시 집사가 일어날 때 제낀 이불 모양이 그대로 있는 침대로 돌아가 이게 무슨 일인지 아직 얼떨떨해 보이는 것 같은데 저럴 정도면 그냥 잠을 잘 것이지 왜 따라 일어났을까...

가려움 때문에 그루밍을 시작하는 고양이

그  새 또 먹었다고 배며 다리며 그루밍을 시작,

집사의 손길에 고로롱거리는 고양이

철수 그루밍에 트라우마가 생길 지경인 집사는 턱밑을 긁어주는 것으로 그루밍을 막아보려한다. 당장에 골골~

불만스런 표정을 짓는 고양이

하지만 손을 떼니 금새 뿌우~ 사람처럼 불만스러움을 표정에 고스란히 드러낸다.

밥 먹다가 돌아보는 하얀 고양이

경철 고양이는 늘 그렇듯 한 끼 식사를 두 세 번에 나눠서 한다. 물 마시고 돌아다니더니 다시 밥을 드시다가 경철 특유의 흘깃! 하는 눈길로 새벽부터 한 판 미소를 짓게 해주신다.

새벽에 커피 한 잔

잠이 다시 들 것 같지는 않고... 커피를 끓여 마시다가 문득 해야할 일을 마저 해치우자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고양이 형제가 계속 자고 있었다면 조용히 커피나 내려서 불도 켜지 않고 마시며 시간을 보낼 참이었는데 이 녀석들도 깨 버렸으니 잘 됐다, 붓이며 페인트며를 준비해 현관으로 나가 일단 마시던 커피는 신발장 위에 올려놓고

현관벽에 페인트 칠할 준비

집주인이 해준 것이 영 마땅찮아 언젠가 내가 다시 해야겠다 생각하고 젯소칠을 미리 한 다음 기운이 다시 날 때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예상보다 훨씬 일찍 본작업을 시작하게 됐다.

현관벽에 페인트칠

지는 이따구로 하면서 뭐가 마땅찮냐고? 집주인은 깔끔하게 해주기는 했지만 곰팡이를 막을만큼 충분히 두껍게 바르지도 않았고 빈자리도 듬성듬성 있어(그 전에 했던 곰팡이 지우기 작업도 내가 다시 한 번 더 했다) 이제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면 듬성듬성한 사이로 곰팡이가 뚫고 올라오는 것은 시간 문제라는 느낌이 들 정도였기 때문에 나는 페인트 칠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냥 뭉텅뭉텅 벽에 붙이듯 두껍게 바를 작정이었고 그렇게 실행에 옮기다가 저 꼴을 만든 것이다.

집사가 무엇을 하는지 궁금한 고양이

집사가 왔다갔다 부산을 떨고 있으니 "엄니, 지금 무슨 일이에여?" 경철은 현관 근처로 나와 정말이지 궁금한 얼굴로 올려다보고

집사가 자던 자리에 앉아있는 고양이

장소는 다르지만 철수도 자세나 눈빛이 경철과 다르지 않다.

페인트 1리터 현관 벽 한 쪽 반에 붙이는데 딱 두 시간이 걸렸다

다 했다. 시각을 보니 5시 4분, 페인트 1리터 현관 벽 한 쪽 반에 붙이는데 딱 두 시간이 걸렸다. 아무리 냄새가 나지않는 무독성 페인트를 썼다지만 혹시, 하는 마음에 현관문을 열어놓고 이웃을 깨울새라 조용조용 작업을 시작했는데 몇 분도 지나지 않아 이내 현관문을 닫아야만 했다. 왜냐하면 경철이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집사를 찾으러 온 집구석을 돌아다니기 시작한 것인데 잠시 그러다 말겠지 했던 예상과는 달리 작업하는 내내 간헐적으로...

침대 위에 엎드린 고양이[집사가 현관에 있다는 걸 아는 녀석은 평온하다]

2시간 정도라면 집사가 외출 했다고 생각 할만도 한데 철수는 찍소리도 않고 가만히 있는데 경철이만 분리불안이라도 있는 고양이처럼 그렇게 울며 지 애미를 찾아다니는 것을 보니 아주 가끔이지만 내가 진짜로 외출 했을 때도 이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철수더 마찬가지지만 귀가 들리기 때문에 지금은 집사가 현관에 있다는 걸 알아서 조용한 것이 아닐까...

머리를 처박으며 졸졸 따라다니는 경철 고양이[일 마치고 들어오니 머리를 처박으며 졸졸 따라다니는 경철 고양이]

그렇다면 집사가 아주 외출을 했을 때는 두 녀석 모두 나를 찾아 이렇게 내내 울고 다니는 것은 아닐까, 다른 사람 식구가 없으니 고양이 형제가 유난히 내게 집착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생각지 못했다. 외출하면 하나보다, 생각하고 즈들 할 일 하리라 믿었는데, 잠도 집사가 자면 함께 자고  어느 날 갑자기 전혀 아닌 시각에 잠자리에서 일어나도 같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지금까지 하지 않았던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 아이들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집사에게 애착을 가지고 있고 의지하는구나를 10년이 가까운 세월 동안 처음으로 깨닫게 된 새벽이었고나 할까, 고맙고  또 고맙고 한 편으로는 마음 아픈 깨달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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