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실에서 지네를 봤다

어디로 들어왔는지, 우리집 세탁실에는 두 개의 하수구가 있는데 하나는 작은 화분과 망 등으로 막아 놨고 다른 하나는 세탁기 물 빼는 용도로 그대로 놔뒀는데

우리집 하수구 구멍

구멍이 대충 이렇게 생기긴 했지만 지네가 들어오기에는 좀 좁아 보이는데 마음만 먹으면 몸을 옆으로 뉘어 올라올 수도 있겠다 싶긴하지만 오래 된 집일수록 잘 생긴다니 이 오래 된 집구석 어디에 그럴만한 틈이 있을 수도 있겠다, 싶긴 하다. 이 집에 와서는 바퀴벌레 퇴치용 약을 한 번도 만들지 않았는데 그 탓일까 싶기도 하고

세탁실에 나타난 지네

아무튼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 눈 앞에 살아서 걸어가는 지네를 보았기 때문에 기록을 해두고 싶을 정도로 쫌 놀랐다. 사진에는 어찌 보일지 모르지만 10cm(내 감으로는 12cm)는 족히 넘어 보이는 것이 소위 왕지네라 불리는, 사람 귓속에까지 겨들어간다는 그 공격성이 강한 넘 같다. 일단 들어오긴 했으니 벌레 지능으로 나갈 길을 찾지 못할 것 같기도 하고 내보내려니 방충망도 열리지 않는 구조인데다 어느 틈인지 모르게 집 안으로 들어와 우리를 공격할지 알 수가 없어서 이런저런 생각으로 허둥대다 결국 세탁실 신발로 눌러 살생을 했다. '미안하다, 가능하면 0.1초라도 빨리 죽어라. 덜 고통스럽게' 하면서 한참을 누르고 비비고 했는데도

네가 눌러 죽인 지네

발을 떼니 이렇게 또 움직이고 있다. 이 무슨 불길한 징조인가, 또 저는 이 갑작스런 일이 얼마나 고통스러울 것인가... 지네가 불길하다는 말은 딱히 들은 적 없지만 생긴 모습 때문인지 독이 있다는 말을 들었던 때문이지 연이어 언짢았던 일 때문인지 아무튼 보자마자 즉시 소름이 끼치도록 불길하고 불안한 기운 엄습했다. 찾아보니 모기약 정도로도 퇴치할 수 있다던데 우리집에는 모기 같은 건 단 한 마리도 없어서 그래서 우리는 몇 년 동안 모기에게 물린 적이 단 한 번도 없어 당연히 모기약도 없어 발로 밟는 잔인한 방법을 선택했다.


아무리 벌레라지만 미안하다, 내 생명이 벌레 같다고 느껴지는 일이 너무나 자주 일어나서 이 아이들 생명도 이제는 허투루 볼 수가 없게 됐다. 그래서 한 생명을 눌러 죽인 기분이 개운치만은 않다. 놔두면 세탁실 드나드는 사이에 집으로 들어와 아이들을 공격할 수도 있어 어쩔 수 없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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