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전에 새로 들인 카메라 테스트를 위해 이것저것 마구마구 찍고 있는데 묘한 장면이 잡히기 시작해 끝날 때까지 계속 따라 잡으니 몇 백 장이나 찍혀 카메라가 스스로 다른 폴더를 만들 정도로 길고 긴 장면이었는데 앞 자르고 뒤 잘라도 20장 이상은 올려야 이야기가 될 것 같아 오늘은 사진이 마않다~
다 자르고 본격적인 시작 장면부터다 - 우연히 지나가다가 마주친 것처럼 보이는 묘묘형제, 한참을 서로 들여다 보고 서 있다가 (자세를 보면 경철 고양이가 쫄아있다)
이윽고 마치 뽀뽀라도 하듯 서로 각도를 맞춰 얼굴을 맞대어 보더니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스윽 크로스해 지나간다.
그리고 한 넘은 이렇게 앉아있고
다른 한 넘은 이렇게 앉아있다.
두 녀석을 한꺼번에 잡아보면 이런 구도다. 이 장면이 얼마나 오래 계속 됐는지 마치 연사를 한 것처럼 비슷한 장면이 수십 장이다. 이럴 때 고양이를 모르는 분들이 보면 그냥 두 고양이가 멍 때리고 앉은 것처럼 보이지만 집사들은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이 묘묘한,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쫄깃한 긴장감을.
집사 심장은 점점 쫄깃거리고 있는데 한 녀석이 꾸물꾸물 움직여 위치를 바꾼다. 등 뒤에 있는 적을 제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위치를 확보하기 위해 움직이는 것이다.
움직이는 녀석이나 가만히 앉은 녀석이나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고 있는데... 사실은 서로에게 100% 집중하고 있는 중이다.
드디어 철수 고양이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니 무심한 척 제 형과 단 한 번도 눈을 맞추지 않던 경철 고양이도 스르르 일어나 다시 한 번 크로스
제 형이 간 곳과 전혀 반대 방향으로 자리를 옮겨 잡으니
철수 고양이 이제 더는 못 봐주겠다 판단 했는지 "야, 너 왜 내가 가까이만 가면 자꾸 피해?"
"대답 할 가치도 없다"는 듯한 표정의 하얀 고양이, 진짜로 대꾸도 없이 일어나 다시 자리를 피한다.
더는 못 참는다, 이렇게 끈질기게 개무시 당하는 일을 오래 참을 철수 고양이가 아니다. 성격이 불 같아서 자리를 피해서 돌아선 동생 꽁무니를 곧장 따라 나서니
[eos m50의 내장 플래시는 가장 약한 빛을 쏘아도 이렇게 나온다. 내가 설정을 다 모르는 것일까...--;;]
이 하얀 고양이는 이미 침대 밑으로 숨어들어 따라온 제 형에게 대놓고 하악질을 날리며 솜방망이질을! 철수 고양이 아닌 밤중에 홍두깨 맞은 격으로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쫓겨 나왔다.
그렇게 제 형을 격퇴하고 다시 밖으로 나와 "오하하!" 통쾌한 웃음을 짓는데... 사실 철수는 정을 많이 주고받고 싶어하는 스타일이라 집사에게도 경철에게도 대단히 좀 치대는 편인데 경철이도 집사도 치대는 걸 엄청 귀찮아 하는 스타일이다. 그나마 집사는 제목이 "엄니"라 화장실이 무쟈게 급할 때 빼고는 좀 귀찮더라도 그냥 다 받아주려 노력하지만 경철 고양이에게는 바늘도 안 들어간다.
그렇게 웃던 요 냉정한 하얀 고양이(이 사진에 얼굴이 너무나 예쁘게 찍힌 걸로 보임 - 내 눈에만 그렁가 ㅎ;;) 이번에는 오히려 제 쪽에서 철수 고양이를 쳐다본다?
매몰찬 거절과 폭력에 뻘쭘해져서 사료로 마음의 허기를 달래고 있는 제 형에게 제 발로 다가간다.
여기서 경철 고양이가 살짝 뒤를 돌아보는 것은 집사를 의식한 것이다. 왜 그러는지 뻔히 아는 집사는 가만히 있어본다.
이런다... 이 장면만 보면 평소에 성격이 괄괄하고 싸움을 거는 것 같은 철수가 경철의 밥을 뺏아 먹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리고 당연히 그리해야 두 아이들의 성격을 봤을 때 논리적이지만 천만에 말씀이다.
여기서 밥 뺏은 넘이 누구인지 보이지 않는가... 하아~~ 경철이 이런 행동을 할 때마다 사실 집사는 이해도 어렵거니와 좀 열도 받는다. 그 옆에 멀쩡하게 다른 밥 있는데 왜 하필 제 형이 먹는 것에 머리를 같이 처박느냐고오~ 하지만 다행히 집사의 말이라면 문장까지 다 알아듣는 철수라서 "철수야, 그 옆에 밥 있잖아 그거 먹어~" 해서 자리를 옮겨 앉았다.
그제서야 이 하얀 깡패 시키 뭔가 좀 캥기는가 집사를 슬그머니 돌아보는데 제가 떳떳하지 않은 짓 한다는 걸 알고 있는 눈이다.
저 눈이 하 같잖아 크게 당겨 봤더니 이 표정이다. ㅍㅎㅎ!
9년을 넘어 10년을 향해 함께 살아가고 있는데 나는 이 묘묘형제의 이런 관계가 아직도 정리가 안 된다. 얼른 봤을 때 싸움을 거는 쪽은 언제나 철수인 것 같은데 끝을 보면 언제나 이긴 쪽은 경철이다. 그리고 저 등 돌리고 앉은 말도 안 되는 긴장감과 몇 번씩이나 크로스해 지나가며 간을 보는 저것은 도대체 무슨 시츄에이션일까? 아무리 이리저리 퍼즐을 맞춰봐도 나는 진짜로 이 묘묘형제 사이에 흐르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를 못 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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