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도 추석이 오면 행복하다

제목 차암~ 아직 옛날 유교 문화가 남아있는 세월이라 "며느리"라는 신분을 가진 분들은 뭔 개떡 같은 소리여? 하는 속 상한 일갈을 하겠지만 현재 내가 며느리가 아니어서 행복하다는 말이 아니라 내가 자라던 집에서 독립한 이 후로 나는 추석 등의 명절이 되면 "아아~ 행복해"소리가 절로 나오기 때문에 쓰게 된 제목이다.

추석 차례상[Pixabay로부터 입수된 jinsoo jang님의 이미지 입니다]

올해는 연휴의 초입부터 과거가 떠오를 만한 약간의 설왕설래가 있어 기분을 왕창 망치기는 했지만 며칠 시간이 지나고 오늘 아침 눈을 뜨니 "추석이네, 행복해~"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고양이 두 마리와 쓸쓸히 맞는 추석이 행복한 이유를 한 마디로 정리하면 나는 재혼가정 출신이라 어쩔 수 없이 우리나라 나이 5세 때부터 꽤나 복잡하고 시끌시끌한 환경에서 자존감을 철저히 짓밟히고 살아야 했던 가정환경 탓인지도 모르겠다.


낯선 사람들의 출현과 동시에 완전히 멀어진 엄니의 관심, 나는 내 이름자도 쓸 줄 모르고 국민학교에 입학 했고 연필을 깎을 줄 몰라 입으로 물어뜯어 흑연을 드러나게 해 쓸 정도로 엄니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을 정도였다. 그것이 끝이었으면 좋았겠지만 들어온 오빠의 이유 없는 폭력과 덩달아 새로이 생긴 엄니의 폭력... 엄니의 폭력은 지금 생각하니 사별한 남편과 너무나 다른 성향의 새 남편 때문에 쌓이는 욕구불만, 실망감 등을 가장 만만했던 내게 표현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으다.

어린 시절에 생긴 정신적 상처

그때의 내 잘못이란 어린 아이들이 흔히 하는 실수, 사소한 거짓말 등이었는데 그런 것이 일체 용납이 되지 않아 현실로 목을 졸리기도 했었고 이 후에 그 엄니의 라인에 조용히 잘 안착 해 나홀로 돋보이고 싶었던, 내가 하는 모든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를 범죄화 시켜 꼬나바치는 세력까지 생겼으니 그 집에서의 내 입지와 자존감 따위에 대해서는 두 말 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지금이나 그 때나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맹한 구석이 있는 나는 그들이 그려준 내게 대한 그림을 보며 세뇌가 돼 정말로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이 범죄인 줄 알고 그들이 내게 하는 것처럼 나 또한 스스로를 "죽을 년, 죽을 년" 하며 짓밟으며 살았다. 


훨씬 더 나이가 들고 인터넷 세상이 돼 다른 세상을 배우면서부터 나의 모든 것이 흔한 아이들이 흔히 하는 사소한 행동들이었다는 걸 깨달았지만 그들은 이미 나를 뭘 해도 어줍잖은 존재로 도장을 찍어놓고 있었고 그 때 그들이 내게 그려준 나에 대한 그림에 세뇌 당한 나는 일생을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지는 길을 스스로 걷게 된다.

바티칸 시국 성 베드로 성당[나는 포장지만 보면 꽤 멀쩡하게 잘 자란 걸로 보였다. 하지만 내심으로는 작은 행동 하나에도 까딱 범죄자로 몰릴까 살얼음판을 걸으며 살았다]

그렇게 5세 때부터 갑자기 시작 된 낯설고 폭력적인 생활의 스트레스가 명절이 되면 극에 달했는데 다른 성씨를 가진 오만 낯선 사람들이 며칠씩이나 들끓어 예의 갖춰 인사를 해야하고 부엌 일도 강제로 거들어야 하고... 내가 지금도 내 밥조차 끓이기 싫어하는 이유가 이 때의 강압적인 부엌일 때문이다.


아무튼 낯가림, 마음가림이 심한 유리멘탈로 태어난 나는 누군지도 모르는 낯선 사람들이 끊임없이 드나드는 것 자체가 견디기 어려웠는데 게다가 몇날며칠 산더미 만큼 많은 음식을 만들고 그들이 오면 내게는 일체 보이지 않던 상냥함과 친절함, 평소에도 그랬지만 명절에 더 집중적으로 그런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 어렸던 내 자존감을 바닥까지 짓밟는 경험이 됐고 그것이 깊고 큰 명절 스트레스로 남은 모양이다. 


역시 할매는 어쩔 수 없다, 한 번 쓰기 시작하니 전설 따라 삼천리가 될 판이라 이쯤에서 줄여야 한다는 현실자각이 온다.

그리운 Wien 시절[그리운 Wien 시절]

내가 하려던 말은 그랬던 본가에서 독립 했을 때, Wien에서의 10여년은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라 명절이 언제이고 어떻게 지나가는지 관심도 없었지만, 한국에 돌아와서 맞은 첫번째 추석날 선명하게 느꼈던 행복감, 해방감의 기억이 아직도 또렷하게 남아있다. 그리고 이 후로 해마다 명절이 돌아오면 "이렇게 좋을 수가!"가 반복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처음 느꼈던 그 때 만큼 선명한 "행복!"은 아니지만 60줄에 들어섰는데 아직도 그 모든 시간들이 지난간 것에 새삼 감사함을 느끼고 있다. 그래서 나는 명절이 되면 잊고 있던 평온한 일상에의 행복과 감사함을 새삼스레 되찾는다. 명절 때면 일상을 빼앗기는 우리나라의 모든 며느리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말이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 아직도 이런 행복이 남아있다는 것은 "원망과 억울함"이 딱 그 크기 만큼 자리잡고 있다는 뜻일테니 죽기 전에는 명절이 와도 그저 그 날이 그 날인 것처럼 여여한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내게 관심도 연민도 없는 사람을 향한 원망이나 억울함 따위를 안고 죽어지는 초라함 따위는 겪고 싶지 않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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