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고양이 형제, 알러지인지 나발인지 때문에 밥은 먹고싶은 것 못 먹고 약만 하루에 세 번 꼬박꼬박, 그걸로 하루 보충해야 할 에너지를 다 채우나 싶을 정도로 먹는 재미 없고 약 먹는 괴로움만 잔뜩 안고 사는 중이다.
약 먹을 시간이 되면 말 하지 않아도 귀신같이 알아차린다. 바닥에 멀쩡히 잘 앉아있다가 약 그릇과 치약을 보고는 캣폴에 뛰어올라 "히잉~"눈치를 보더니
이내 벽에다 고개를 처박다시피 하고 독 안에 든 쥐가 된 것을 인정하는 모습이다. 집 안 어디로 숨더라도 집사 손이 닿지 않는 곳은 없다는 것을 이미 인지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건 갑자기 뭐? 냥발이다 아니, 냥손가락이다 - 경철이 새끼 손가락 ㅋㅎㅎ~ 이렇게 손가락 하나로 아무 말 없이도 제 모든 감정을 한 방에 표시하는 것이다.
이만하면 집사 운이 더럽게 좋은 것이다, 딱 티셔츠 실 한 오라기가 손톱 하나에 걸린 것 뿐이니까.
새끼 손가락을 저렇게 집사 옷에 걸고 몸은 이러고 있다. 제가 놓은 덫에 제가 걸려 손가락 때문에 못 빠져나가고 있는 참이다.
이제 손을 타라락! 털어서 옷에 걸린 손가락을 빼내려니 얼굴이 같이 움직여 드러나는 옆모습이 집사 눈에는 환장하게 예쁘다.
"철수야, 약 먹고 양치질 하자아~" 이 녀석은 말을 알아들으니 약이나 치약을 안 봤어도 표정에서 거부감이 드러난다. 딱한 내 시키...
"가자, 착하지~"며 궁디 팡팡을 해주니 그나마 기분이 풀리는지 민배를 드러내며 엉덩이를 치켜든다.
그리고는 제 발로 캣폴을 내려오기 시작한다.
제 발로 약 먹고 양치질 하러 내려오는 고양이라니 얼마나 기특한가!
이미 당할 것 다 당한 경철 고양이가 별 꼴 다 본다는듯 용감하게 내려오는 제 형을 구경하고 앉아있다.
그런데 철수 고양이 가는 방향 봐라, 저거이 스스로 약 먹고 양치질 당하러 가는 방향인가? ㅋㅋ 집사는 이 쪽에서 사진 찍고 있으니 아이 얼굴이 카메라 쪽을 향해 오고 있어야 오는 것 아닌가 말이다. 그러니까 나름 방 밖으로 달아나는 중이었던 것이다.
결국 안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잡혀서 당할 것 다 당하고 차마 집사 옷에 손톱 못 박은 이 녀석은 대신 기둥에 대고 바각바각 분풀이를 하고 있다. 와중에 경철 고양이는 무슨 좋은 볼거리나 생긴 것처럼 제 형을 졸졸 따라 다니며 장면마다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저러나 집사는 이렇게 잘 못 먹고 약만 먹어야 하는 아이들 때문에 순간순간 쓰레기 밥을 다시 줄까 유혹을 받고 있다. 제한식이 덕분인지 경철의 귀도 지금은 깨끗하고 철수의 오버그루밍도 80% 이상 사라졌지만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아무 낙이 없는 아이들이 너무나 불쌍하고 다른 방법을 찾지 못하는 집사가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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