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마다 볼 수 있는 노숙냥 코스프레

엣날에는 여름만 되면 하천가에서 돗자리 깔고 밤마다 노숙하던, 멀쩡하게 제 집 있는 사람들이 아주 많았다. 할랑할랑 부채질을 하다가 다리를 물어뜯는 모기도 탁 때려서 잡고, 심지어 모기향도 피워놓고... 예나 지금이나 별로 이해는 가지 않지만 요즘은 이해를 할 수 밖에 없는 일이 우리집에도 매 년 여름에 생긴다. 

노숙 하는 고양이

바로 이 모습이다. 아띠! 침대에서 내려 서다가 콱 밟을 뻔했다. 저 좋아하는 바구니 깔개 책상까지 다 놔두고 왜 하필 여기서 노숙을 하는 것이냥? 그것도 공기청정기 선을 깔고 누워 엄청 배기겠구만... 워낙 어딘가 올라앉고 들어앉기를 즐기는 아이들이라 맨바닥에 드러누워 있는 모습을 보면 괜스리 마음이 찌르르, 내가 무언가 아이를 홀대한 것 같은 죄책감을 느낀다.

바닥에서 자는 고양이와 위에서 내려다 보는 형

같은 고양이 눈에도 이 어설픈 노숙자 코스프레가 신기 했던 것일까 아니면 같잖았던 것일까 침대 위에서 고개를 빼고 제 동생 자는 꼴을 내려다 본다.

잠에서 깨 집사를 올여다 보는 고양이

들리지는 않지만 뭔사 수상쩍고 어수선한 기운을 느꼈는지 고개를 번쩍 들고 "그러면 그렇지 엄니가 또 사진 찍고 있었지 뭐~" 하는듯

바닥에서 낮잠을 자는 동생을 침대 위에서 내려다 보는 형 고양이

다시 안심하고 자던 자세로 돌아갔지만 사실 집사의 심장을 쫄깃거리게 한 것은 침대 위에서 계속 제 동생의 동정을 살피고 있는 철수 고양이였다. 물론 고양이들은 진짜로 원수와 싸우거나 사냥을 할 때가 아니면  자는 넘을 뒤에서 또는 위에서 덮치지는 않는다. (한 마디로 그들은 개구쟁이지만 신사적이다) 하지만 집사는 만일의 경우를 위해 계속 "철수야~ 철수야~" 하며 달래는 소리를 낸다.

바닥에서 낮잠을 자다 눈 뜬 고양이

"뭐가 이리 계속 어수선하지?" 노숙냥이 다시 눈을 뜬다. 제 형이 침대 위에서 저를 건너뛰어 저 쪽으로 날았기 때문에 공기의 흐름이 어수선했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 녀석은 일 년에 두 계절, 이렇게 노숙냥 코스프레를 하는데 그 중 한 계절은 지금과 같은 여름이고 - 이유는 에어컨을 가동하면 바닥이 엄청 시원해지기 때문 - 나머지 한 계절은 겨울인데 이유는 뻔하다, 보일러를 가동하면 바닥이 엄청 따뜻해지기 때문이다.


아무튼 집사는 여름에 엄청 더워 바닥이 엄청 시원하거나 겨울에 엄청 추워 바닥이 엄청 따뜻한 날에는 침대에서 무심코 그냥 내려서서는 절대로 안 된다. 단 한 번도 밟은 적은 없지만 밟을 뻔한 일은 매 년 두어 번씩 있었기 때문에 정신 바짝 차려야 할 일이다. 고양이나 집사나 이제 점점 주의력이 느슨해지는 늙은이가 돼가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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