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철 고양이는 귓병약을 다시 먹기 시작 하면서 완전히 식욕을 회복한듯 건사료도 습사료도 잘, 아주 잘 먹는다. 심지어 제 형 습사료를 다시 넘보는 짓까지 시작 했으니 이 아이의 먹을거리에 대해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그리하여 감자 갯수와 크기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귓병이 식이 알러지의 일종이라면 지금 먹는 생식본능 LID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 해 볼 문제라는 숙제가 아직 남아있지만.
아무튼 오늘은 일찌감치 아침을 먹고 약도 미리 준비 해뒀다가 식사가 끝나자마자 바로 먹였는데 어라? 경철 고양이가 사라졌다. 이제 숨을 일이 없는데 왜, 어디로 갔을까? 혹시 작은 방 새로운 TV를 보러갔나 가봐도 거기에는 없다. 그렇다면 있을 곳은 침대 아래 뿐이다. 아니나 다를까, 바구니와 휴지통 뒤에 꽁꽁 숨어 눈만 빼꼼~ 하고 있는 걸 다 치우고 셔터를 눌러보니 이러고 있다. 나름 아주 꽁꽁 숨어 있었던 셈인데, 왜...??? ㅋㅎㅎ!
사연은 이렇다. 매일 아침 차려주고 집사는 부엌으로 나가 즈들 먹일 약을 준비하는데 이것저것 소분해 캡슐에 담느라 시간이 꽤 걸려 밥 먹고 난 녀석들이 나와서 집사가 뭘 하는지 다 보고 "앗, 약 만드네!" 하고 각자 흩어져 숨어버리는 것이 일상이라 약 먹일 때마다 아이들 끌어내느라 애를 먹었다.
[집사를 보자 고개를 돌리고 잠시 생각에 빠진 경철 고양이]
그래서 명색이 사람이라 꾀를 낸 집사, 아침에 먹을 약을 전 날 미리 만들어두고 아침 차릴 때 같이 슬며시 꺼내다 놨다가 식사 끝나면 바로 잡아서 약을 먹이기 시작한 것이 이틀째다. 그런데 이 맹한 하얀 고양이가 약을 이미 먹었다는 걸 잊어버린 것인지 아니면 "이 시간 쯤에는 약을 먹는다"로 입력한 것을 지우지 못한 것인지 한 마디로, 헛갈려서 이렇게 꽁꽁 숨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고양이, 집사를 본 후 외면하고 잠시 생각에 빠진듯 보이더니 초점 바꿀 새도 없이 갑자기 벌떡 일어선다. 그런데 저 표정 좀 보소!
아무래도 누구에겐가 무엇엔가 단단히 화가 난 표정이지 않은가? @@;; - 집사의 잔머리에 자신이 속았다는 걸 아까 잠시 외면 했을 때 문득 인지 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속인 집사에게 화가 났을까 아니면 속아넘어간 자신에게 화가 났을까? 사실 집사는 약 안 먹이는 척하고 갑자기 먹인 속임수를 쓴 건 아니어서 내게 화가 났다면 억울한 일이다.
뚜벅뚜벅 걸어가면서 옆눈으로 야리는 걸 보니 아무래도 집사에게 화가 난 모양이다. 그래, 원래 똑똑한 짓 하면 제 탓, 멍청한 짓 하면 남에 탓이니 너도 그런 심리인 모양이다, 하고 속 넓은 집사가 참아준다.
화 나니까 처묵처묵!
이렇게 넓은 그릇에 줘도 이 녀석은 반드시 1/3 정도의 사료를 그릇 밖으로 튕겨내는 특별한 재주를 갖고 있다. 다 튕겨내도 좋다, 아프지만 말아다오!
약 먹을 일 없다는 걸 완전히 인지한 모양이다. 아직 화는 덜 풀렸지만 컴터 책상으로 올라와 집사 옆에 딱 붙어앉은 걸 보니. 귀도 깨끗하고 밥도 잘 먹어 집사도 오랜만에 기분이 좋다. 그러나... (오후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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