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고양이, 참으로 말갛고 깨끗하고 얌전하게 생기지 않았습니까? - 뭉개진 귀 한 쪽이 옥에 티지만 말입니다.
ㅎㅎ, 좋아서 웃는 게 아니고... 저 마알간 눈동자를 들여다보니 내가 새삼 미치고 환장 하겠네~
그러데 갑자기 이것이 무슨 그림인고? 분홍분홍 달콤할 것 같던 젤리가 잘 절인 명란젖 같이 변해 버렸다.
이것이 이 사건의 전말이다 - 그림에 있는 번호대로 동선을 찍은 것인데 이 맑고 깨끗해 보이는 하얀 고양이, 마침 집사가 침대 위에 간이식탁을 차려 점심 먹는 뒷쪽 (집사 머리보다 높은 곳)에 있는 바구니에 앉았다가 그대로 청양고추 찍어 먹으려고 내놓은 고추장 종지 위로 뛰어 내리신 것이다. - 나는 매운 걸 좋아해서 고추장 중에서도 최고로 매운 것인데... 그리고 침대 시트는 어제 바꾼것이당... 엉엉~
하지만 이 지경이니 저는 저대로 얼마나 놀랐을까, 뭔가 끈적 미끄덩한 것이 발바닥에 철썩 들러붙으니 찝찝한 것 죽도록 싫어하는 고양이 삼신 심장도 발끝까지 철렁 했으리라 생각하니 딱해 죽겠!
밟은 직후의 모습이야 당연히 찍을 수 없었고 목욕탕에 데리고 들어가 물 틀고 씻기면 무슨 지롤이 날지 뻔히 알기 때문에 마침 아이를 붙잡은 그 자리에 즈들 물그릇이 있어서(4군데 있다) 거기다 대고 최대한 바락바락 씻어낸 것이 저 위의 그림이고 얼마나 제대로 밟았는지 물에 고추장 건더기가 적잖이 가라앉아 있는 것도 확인이 된다. 미쳐미쳐~~
그리고 이번에는 반려동물용 물티슈 3~4장으로 다시 바락바락 닦은 후의 모습이다. 비누칠 해서 제대로 씻겨야 안심인 건 나도 아는데 도저히 그걸 견뎌줄 아이가 아니니 좀 진정시켰다가 물수건, 비누 제대로 준비해놓고 다시 닦아줘야 한다. 이렇게만 씻어도 지롤발광을 하는데 흐르는 물에는 그야말로 "생지롤발광"을 하기 때문에 꿈도 못 꾼다.
그 난리를 친 후에 놓아줬더니 저만치 멀리 달아나 지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아는 것 같은 표정인가? 입에 힘도 못주고 헤벌어진 것이 완전 넋이 나가 보인다.
"AC, 미쵸 버리겠네!" 표정 한 번 적나라하다.
그러더니 씻느라 제 몸에 튄 물방울들을 정리하기 시작 하신다.
오른손으로 닦고
왼손으로도 닦고~ 한참을 신경질적으로 그루밍을 하시는데 저러다 고추장 밟은 발을 그루밍 하면 어쩌지, 집사는 걱정 중이지만 이 행동은 실상 제대로 하는 그루밍이 아닌 자신을 진정시키기 위한 그루밍으로 보인다.
다행히 발은 건너뛰고 저한테 뭔가 심각한 일이 있었던 건 아는 표정으로 집사를 바라보다가
스트레스를 풀려는 듯 아까 먹다 남긴 밥을 먹으면서 집사를 흘깃거리는데 아이고, 저도 나름으로는 식겁을 한 모양이다. 얼굴이 한꺼번에 10년은 더 늙어 보인다.
그리고는 바구니로 돌아가서 고추장 발을 그루밍하기 시작 하시는데 "그래, 매운 맛을 봐야 그루밍 안 하지" 싶어 내버려 뒀더니 정말로 이내 그만 둔다. 저렇게 버얼건 게 남아 있는데 고양이 입에 안 매울 리가 있나...
그리고 지금은 다시 진정이 됐는지 그 동안 수습하고 겨우 다시 밥을 먹기 시작한 집사 다리에 기대어 낮잠을 청하고 있다. - 여기서 다시 증명 되는 한 가지, 아무리 고양이라 해도 하는 짓을 보면 머스마는 머스마인 것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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