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똥고양이 철수를 "돈"주고 산 이유

제목이 좀 험악한 느낌이지만 오늘 이 글을 쓰고 싶어진 이유가 저 제목 속에 담겨 있기 때문에 좀 험악해도 그냥 써본다. 

분양 게시판에 올라왔던 2개월 된 똥고양이 철수[분양 게시판에 올라왔던 2개월 된 똥고양이 철수]

중요하게 생각지도 않았고 그랬기 때문에 가족들에게도 말 해 본 일이 없는 똥고양이 (흔히 말 하는 똥개와 같은 의미다 - 토종 고양이)를 굳이 돈까지 지불하며 "사들인" 이유를 오늘 어떤 커뮤티니에 올라온 질문글을 보고 갑자기 상기하게 됐다.

질문글의 내용에 대해 굳이 말하자면 "동네 펫샵에서 2개월 된 아이를 70만 원 부르는데 돈 욕심 부리지 않고 랙돌(렉돌)고양이 저렴하게 분양 해주실 분 어디 없습니까?" 였다.

나를 빡치게 만든 대목은 "돈 욕심 부리지 않고"라는 구절이었다.  -  좀 더 저렴한 물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품을 원한다는 내용으로 해석이 됐다.


랙돌이라...랙돌의 외모가 너무나 마음에 들고 꼭 키워보고 싶다는 마음은 이해가 간다. 사람의 모습에도 호불호가 있어 그것에 따라 연애를 하고 결혼도 하듯이 반려동물이라고 왜 외모를 따지고 싶지 않겠는가.

랙돌 고양이[랙돌 고양이 - Pixabay로부터 입수된 Blue-Heaven님의 이미지 입니다.]

하지만 랙돌이라는 품종을 사들여 번식을 시키고 분양을 할 정도의 사람이라면 "돈 욕심"을 빼고 생각할 수 있는 다른 무엇이 있을까? 하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반드시 랙돌을 기르고 싶고 그 아이가 생산해 낼 생명들의 미래와 모체의 건강까지 생각한다면, 그게 나였다면 중성화를 시켰을 것 같으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내 말은 돈 욕심 부리지 않는 분양자를 만나려면 입양자는 외모, 품종에 대한 욕심을 버려야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돈 욕심 없는 사람이 어떻게 제 새끼를 돈 받고 파느냐고오~


그러니 품종을 따지고 싶은 사람은 그와 같은 사람이 요구하는 가격을 주고 사면 된다. 랙돌(렉돌) 한 마리에 70이면 싼 물건이다! 적어도 100 많게는 500이 넘어가기도 하는 고양이 품종이니까!

스코티쉬 폴드 고양이[스코티쉬 폴드 - Pixabay로부터 입수된 kladann2님의 이미지 입니다.]

애초에 나는 고양이와 오래 살면서도 고양이 중에는 털이 긴 것과 짧은 것들이 있다는 정도만 알던 사람이라 (Wien에서 짧은 털 2마리, 그 전에 긴 털 한 마리를 경험) 고양이의 품종을 따지는 문화가 있는지도 몰랐고 더구나 품종묘 시장이라는 것이 있는지도 몰랐는데 한국에 돌아와 랜선 집사 생활을 몇 년 하다가 품종묘, 품종개들의 사육과 유전병에 대한 진실을 알고부터(사실 나도 처음에는 얼른 외모만 보고 스코티시 폴드를 원했었다) "품종"에 ㅍ자도 듣기 싫어진 입장이라 이런 수요가 있으니 잘못 된 공급이 끊이지 않는다는 생각에 별 질문 아님에도 불구하고 뭔가 불끈 솟구쳐 오르는 화가 있었다.


그래서 생각 난 것이 내 고양이 철수를 입양하게 된 사연인데

유난히 코가 커 보였던 아기 고양이 철수[유난히 코가 커 보였던 아기 고양이 철수]

랜선 집사였던 만큼 이곳저곳 고양이 카페를 돌아다니다 발견한 게시글, 내용인즉 하얀 단모와 중장모의 터키시 앙고라 부부가 새끼를 다섯 마리 낳았는데 왜, 왜, 왜? 철수 같이 생긴 이런 아이가 장남으로 태어난 것이냐, 기절할 뻔했다~ 식의 내용이었고 


그 얼마 후에 분양글이 올라왔는데 오드아이로 태어난 여자아이는 글이 올라오자 마자 여러 곳에서 찜을 한 모양이었고 중장모로 태어난 노란 눈을 한 아이도 찜이 됐고 남은 아이들은 두 마리의 파란눈(난청)여아와 남아 그리고 저 똥고양이 철수. 2개월 되던 시점에 분양글이 올라왔는데 3개월이 다 되도록 나머지 세 아이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내 새끼 경철 고양이[눈에 넣어도 안 아플 내 새끼 경철이]

게시글의 내용으로 짐작컨데 시나리오가 머리 속에 저절로 써지는 것이 고양이를 잘 모르고 크게 좋아하지도 않는 한 청년이 아르바이트 삼아 고양이 한 쌍을 들여 번식 시킨 다음 용돈이라도 벌 생각이었던 것 같다는 것이었는데 품종 고양이 찾는 사람들은 철수 같이 생긴 아이는 절대로 데려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나는 그 때 이미 알고 있었고 집안에서 태어난 아이가 어쩌다 밖으로까지 내몰리는 상황이 되면 그 아이의 생명은 그 길로 끝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고 마침 나도 "나만 고양이 없어!"라고 서러워 하던 시절이라 저 아이, 똥고양이 외모를 하고 있어 도태되기 전에 내가 데려와야겠다는 마음이 저절로 들었던 것인데 지금 생각해보니 생명에 대한 인식이 그 일을 계기로 조금씩 깨우쳐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똘망똘망 성깔 있어 보이던 아기 고양이 경철이[똥고양이 때문에 어부지리로 따라온 서브 고양이]

문제는 내가 TK에 있고 이 아이들은 인천에 있었다는 것인데 우리 가족, 정말로 못마땅하고 원수 지고 싶은 부분이 많은 사람들인데 이런 일에 만큼은 "왜 하필?"이라는 토 한 번 달지 않고 마침 인천에 살던 작은 언니 부부가 그 쪽에서 달라는 돈 다 주고 (고양이 값은 그 때까지 건강하게 살아계시던 울엄니가 냈다) 직접 차를 몰고 이 아이들을 내게까지 모셔다 줬다는 것이다. 그리고 왜 하필 똥고양이 외모~ 에 대해서도 단 한 마디도 묻지 않았다는 것 (내 가족의 이런 면은 정말이지 자랑스럽다)

마우스 커서의 움직임에 영혼을 팔아버린 아기 고양이 두 마리[마우스 포인터의 움직임에 영혼을 팔아버린 아기 고양이 두 마리]

직접 아이를 데리러 갔던 언니가 전하는 이야기는 어쩌면 내가 상상했던 시나리오와 그리도 똑 같은지 좁디좁은 아파트에 고양이 6마리가(하나는 이미 데려갔고) 청년의 돌아설 자리도 없는 방에 바글바글, 할머니 할아버지는 이누무 시키들 털 날리고 냄새 난다며 싫은 기색이 역력해 도저히 고양이 키울만한 환경도 여력도 없어 보였다는 것... 


그리고 청년은 얼마 후에 다시 카페에 들어가보니 게시글도 모두 내리고 사라지고 없었다. 터키쉬 앙고라 정도의 고양이 사업으로는 큰 재미를 못 봤을 것이다. 게다가 철수 같이 생긴 놈이 중장모도 아니고 단모로 하나씩 튀어 나오면 대략 난감! 적어도 랙돌이나 노르웨이 숲 정도는 돼야 돈이 되재!

이렇게 우리는 함께 노년기를 향해 가고 있다[이렇게 우리는 함께 노년기를 향해 가고 있다]

이런 사소한 질문으로 떠오른 회상을 굳이 쓰는 이유는 생명은 생명 그 자체로 봐 주시기를, 그 품종과 꼭 가족이 돼야겠다고 생각 하신다면 어디가서 싸고 근사한 물건 고르듯이 "돈, 돈" 내놓고 그러지들 마시기를, 그리고 또 다른 쪽에 있는 분들은 내 가족을 팔아 큰 돈 만들려 하지 마시기를... 


마무리 하려다 또 갑자기 생각나는 에피소드 하나, 그 댁도 터키시 앙고라로 아이들을 생산하고 있었는데 수고양이 한 마리에 암고양이 두 마리를 두고 동시다발적으로 새끼를 낳게 해 무려 8마리를 분양하고 이제 한 마리 밖에 안 남았어요, 싸게 드릴게요 식으로 홍보를 하길래 '부부 한 쌍을 놓고 그러는 것도 아니고 일부이처에 동시에 새끼들 낳게 해서 분양하는 것은 비윤리적이지 않나'는 논조의 댓글을 달았더니 "그럼 고양이 밥값은 누가 벌어요? 악성 댓글 신고합니다!"라고 펄펄 뛰길래 신고 당할까봐 무서워 조용히 물러난 적이 있었는데 

순종 터키쉬 앙고라 고양이[Bild von pixabay.com/de/users/Nina_photographer - 순종 터키쉬 앙고라는 이렇게 생겼지 말입니다 ㅎ]

반려동물이 제 밥값을 제 새끼 낳아서 파는 걸로 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구나, 그런 사람들에게 반려동물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오늘의 저 질문과 함께 다시 한 번 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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