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형제 철수와 경철이

시근이 고양이만도 못한 집사

비누바구니 2018. 8. 9. 06:31

※ 제목의 "시근"은 경상도 사투리로 "분별력, 판단력"이란 뜻이다


어제는 귀청소 사건으로 세 식구가 모두 스트레스 만땅이었는데 철수 고양이는 지난 밤에 벌써 마음을 풀었고 경철 고양이는 오늘 오전까지 침대 밑에 들락거리다가 딱 24시간이 지난 오후 2시에야 완전히 밖으로 나왔고 저녁 시간인 지금은 가는 곳마다 다시 빽빽거리며 따라다니기 시작했는데 집사만 아직 스트레스에서 눈꼽만치도 놓여나지 못한 것 같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좀 무심해도 되는 일인데 아이들 일거수일투족을 곁눈질로 관찰 하다가 괜찮아지니 긴장이 풀려 넉다운이 되는 듯한 느낌과 함께 어제 붙잡고 할퀴고 소동을 부리느라 미진했던 귀청소를 조만간 다시 한 번 해야 개운할 것 같아 그 짓을 또 할 생각에 미리 받는 스트레스인 모양이다.

댕댕이들처럼 집사가 하자면 뭐든 유순하게 따라주면 병원에 가는 편이 확실한 진단도 받고 귀청소도 한 방에 하고 좋으련만 병원 행차 한 번 하려면 즈들이나 집사나 목숨을 반은 내놓고 (하도 나 죽는다고 지롤들을 하기 때문에) 움직여야 하니 죽을 병 아닌 다음에야 도무지 갈 엄두가 나지않고... 상전도 이런 상전이 없다

이래저래 불편하고 복잡한 마음에 엎어져셔 스크래처만 짜고 있었더니 손톱이 아프도록 손은 땡땡 부어오르고

고양이 형제는 뭐 하라고 만드는 것인지 이런 건 가르쳐 주지 않아도 귀신같이 알아차려 

이 전에 말 했다시피 손바닥 만큼 짰을 때부터 오늘까지 오며가며 야무진 스크래칭 한 방씩 때려 주신다 - 이 그림은 귀청소 전 날인 그저께의 장면이다

게다가 쟁탈전이 벌어지기까지 하는데, 경철의 이 모습은 (이 봐라 집사, 이야기가 또 옆길로 샌다) 스크래칭에 열중이다가 검은 그림자가 주변을 슬슬 돌며 어슬렁어슬렁 하니 바짝 졸아 경계태세에 들어간 것이다

맛깔나게 하던 스크래칭도 멈추고 얼음이 돼 눈길을 피하며 앉았다. 경철아, 엉아가 그렇게 무섭나... 딱하지

"야, 비켜!"

"안 해, 니가 비켜!"라고 제법 대거리를 하는 듯 보이지만 실은 "옙!" 했던 모양으로

순식간에 스크래처는 철수 고양이 차지가 돼 버렸다


하던 이야기로 돌아가서 - 이렇게 열심히 애용해 주시는 덕분에 완성을 보면 이미 너덜너덜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예감이 드는 작업도 귀청소 전 날 저런 사이즈였던 것이

스트레스 덕분에 이틀 동안 이런 성장을 보였으니 짜 온 날짜 만큼만 더 애 쓰면 완성을 볼 것 같은 모양새가 되었다. 철수 고양이는 내가 스크래처 일을 하거나 말거나 얼굴이나 엉덩이나 반드시 어느 한 곳은 스크래처에 몸을 붙이고 있다. 일을 방해하자는 심보인지 스크래처가 너무 좋아 그러는 건지 맹한 집사는 알지 못하다가 방금 좋은 답을 얻었다 - 손톱까지 아프도록 손이 붓는다니 쉬라고 그러는 것이여~ 어째 시근이 고양이만도 못한겨

사실은 지끈 스크래처 만들기 이 전에 판때기에다 면줄을 꽁꽁 감아

이렇게 만들어 줬더니 두 녀석 모두 멀뚱멀뚱 "이 뭣에 쓰는 물건인고?" 하고 있다. 내가 손으로 까닥까닥 소리가 나게 뜯으면서 "이거 하라고오~" 해도 "너나 해라"는 반응 - 그래서 마음을 고쳐먹고 시작한 것이 지끈 스크래처였다. 저거 탱탱하니 감는 일도 만만찮았는데 

진작에 쓸 만한 걸 만들지 괜히 꼼수를 부려 고생만 이 중으로 하고 있다 - 그러니까 이래도 저래도 시근이 고양이만도 못한 집사지...


그러나 저러나 귀청소를 다시 한 번 할 생각을 하니 까마득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두 녀석 모두 더 이상 귀를 긁지 않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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