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 밖 아이들과의 추억

물통 속으로 피신한 아깽이

비누바구니 2018. 7. 30. 08:01

한 여름 더위가 아침부터 펄펄 끓는데 창밖에서 갑자기 "우워우 와워우~" 한 쪽에서 선빵을 날리면 다른 쪽에서 한결 높은 톤으로 "아!우어~" 악센트까지 넣어가며 받아치는, 이 캣맘으로 하여금 동네 눈치 보게 만드는 반갑지 않은 이중창이 시작된다.


대개는 밤 늦게 울려퍼지는 이중창인데 오늘은 아침부터다. 마침 지영이가 몹시 보고프고 궁금하던 참이었기에 둘 중 한 목소리가 지영이길 바라면서 얼른 카메라를 들고 내다본다

물통 속에 아깽이 한 마리! 가장 먼저 카메라에 포착 된 장면이다 (사실 방범창 때문에 육안으로는 아무 것도 확인 할 수가 없었지만)


얼마 전 제 애미를 따라  나를 사냥하러 왔던 그 녀석이다. 그러니까 예쁜이의 자식이다

"이누마, 거어서 머 해?" 

처음에는 더위에 몸을 식히려 물통 속에 뛰어들었나 했지만 다시 상황을 정리 해보니 양쪽에서 소리를 질러대니 깜짝 놀라 엉겁결에 훌쩍 그 속으로 숨어 들었거나 침략자를 피해 나름 숨는다고 한 것이 그 곳이었거나 - 이쪽 저쪽 돌아봐가며 어쩔 줄 몰라하는 모양새다. 아깽이가 저기 있다면 어디엔가 애미가 있을터 (이중창 중 한 목소리가 틀림없이 예쁜이겠지라는 짐작), 

애미를 찾으려고 카메라를 담장 위로 옮기니 이 녀석이 뙇! - 물통 속 아기를 노리는 모양새로 서 있다. 이것이 이중창이 시작된 원인인 모양이다


이 녀석은 지봉이가 낳은 새낀지 입양한 아인지, 하여간 지봉이와 건너편 차고에 등 따시고 배부른 집을 분양 받아 사는 그 삼색이. 모르는 사람이 보면 물통 속 아깽이 애미로 여길 정도로 두 녀석이 비슷한 옷을 입고 있다.

내 기척을 의식 했는지 담장 위에 얌전히 앉아보이는 녀석이다 (이 녀석이 나중에 '꽃네'가 된다)

"이 녀석아, 네가 지봉이 친딸이라면 몰라도 입양한 딸이면 여어서 소리 지르면 안 돼! 더구나 등 따시고 배 부른 집 있는 냔이 왜 여그 불쌍한 녀석들 밥자리를 넘보는 것이냐? 네가 만일 진짜 지봉이 딸이어서 예쁜이에게 밀려난 할머니랑 엄니랑 다 다시 데려오려면 소리 질러서 이기거라 꼭!"

역시 제 집 두고 보살핌 받는 녀석은 옷태가 다르다, 길아이 옷이 저리도 말갛고 깨끗하다니~ (내 이 녀석을 겪으면서 삼색이는 성질머리가 더럽게 더럽구나를 처음으로 깨달았다)

삼색이를 찍는 사이 아깽이는 훌쩍 물통에서 뛰어내려 애미에게로 가버리고 

새끼가 무사히 돌아오자 드디어 예쁜여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저 표독스런 표정! - 요 냔, 니가 예쁘기는 하다만 너 역시 굴러온 돌 주제라는 걸 잊어버린 게냐?!

나는 진심 지영이 가족이 돌아왔으면 좋겠다. 교회 옆집, 삼색이네 아줌니가 잘 보살펴주기야 하겠지만 가아들은 내 새끼라요~~~

삼색이가 담장을 타고 예쁜이 있는 집 쪽으로 향한다. 한 판 제대로 맞짱을 떠볼 생각인갑다 짐작이 되지만 나는 문을 닫는다. 누가 먼저 맛있는 것 먹을지는 즈들이 스스로 정하는 것이고 나는 그저 꼬박꼬박 밥을 내다드리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으므로.


그리고 오후에는 예쁜이의 다른 아깽이 샛노랑이도 잘 있다는 걸 과일 사서 돌아오다 밥자리에서 확인 했다. 남자 아이인 듯 얼굴이 즈 애비 담북이 빼다 박았더라 --;; 쌈박질을 하거나 말거나 모두 무사하기만 하면 나는 그것으로 족하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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